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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투자에 대하여

본전과 투자 그리고 민족자본

by 격암(강국진) 2021. 5. 7.

오늘은 본전과 투자심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 집 한채를 1억에 샀다고 하자, 혹은 주식을 1억어치 샀다고 하자. 그런데 이것들이 3억으로 올랐다. 그러면 본전이 1억인 나는 2억을 벌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집이나 주식이 2억 5천이나 2억이 되어도 아쉽기는 하지만 공황에 빠지지는 않는다. 즉 기다릴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된다. 하지만 2억 8천쯤에 샀는데 집이나 주식이 2억 5천이 되어 3천의 손실이 나게 되면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이미 3천의 손실이 났으니 주식을 팔아야 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이미 나심 탈렙이나 다니엘 카네만 같은 사람들에 의해 진작에 지적되어진 논리적 오류다. 지금 이 순간 주식을 팔까 말까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는 미래에 이 주식이 오를까 아닐까만 중요하다. 내 본전이 얼마인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본전생각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투자를 해놓고 매일 매일 주식그래프를 보지 말라고 권하기도 한다.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우리는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나는 2020년이 한국 경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인터넷에는 개미니 주린이니 하는 표현들이 넘쳐나지만 2020년에 생긴 일들 중에서 의미심장한 일들 중의 하나가 개인투자가들이 많은 한국 주식을 샀고 주가지수는 크게 올랐으며 그들이 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주식에 장기간 재산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의미다. 많은 사람들의 본전은 지금의 주가수준보다 훨씬 밑이다. 한국 개미들이 가장 많이 산 주식은 삼성전자였다고 하는데 삼성전자는 1년전만 해도 5만원도 하지 않았으니 60%정도가 오른 셈이다. 이들은 한국 주식 시장을 지켜줄 토대가 될 수 있다. 

 

본전심리에 있어서 기관투자가는 개인과 다르다. 그들은 애초에 자기돈을 가지고 투자를 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도둑이 없으면 경찰이 의미가 없듯이 사고 파는 거래가 없으면 투자 전문가는 사실 무의미하다. 그들은 그래서 대개 두가지 이야기를 한다. 하나는 자신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투자 전문가가 예측을 못한다고 인정하는 경우는 없다. 또하나는 그래서 그 예측에 기반해서 자꾸 사고 팔라고 한다는 것이다. 주린이니 개미니 하는 용어는 누군가가 스스로를 격상시키기 위해 만들어 낸 용어들이다. 자신들만이 알고 있는 지식을 알면 미래 예측이 가능한데 주린이는 그걸 모른다는 것이다. 

 

전문투자가들 특히 투자로 성공해서 큰 돈을 번 사람들이 아니라 무슨 증권사 직원으로 라디오나 티비에 나오서 주식에 대해 해설해 주는 직업이 거래 전문인 사람들은 그 직업상 본인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주식은 본래 자꾸 사서 파는 것이라고 말하게 되어 있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들이 말하는 장기투자란 마치 미용학원에서 가장 화장을 안하는 여자가 나는 화장에 긴 시간을 들이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1시간이면 충분하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즉 그들이 말하는 장투의 기준은 이미 그들의 주변사람에 의해 끌어내려져 있다. 전문투자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개 주식 그래프가 마구 요동칠 때 돈을 번다. 

 

한국에서는 주식이라고 하면 도박같이 여기면서 바람직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생각해 보면 이건 보수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이야기다. 미국의 최고부자들을 보라. 재벌 3세에 4세이야기까지 나오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의 부자들은 거의 다가 주식부자들이고 자수성가한 사람들이다. 토지나 건물은 대개 가격이 너무 크다. 그래서 부동산 위주로 돌아가는 경제는 사실 젊은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서울 중심가에 건물을 사면 큰 돈을 벌수 있다고 확신해도 그걸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세상이 기업중심이 되고 주식중심이 되면 젊은 사람들이 보다 쉽게 진입할 수 있고, 자본보다 정보가 더 중요해진다. 특히 요즘 성장하는 신산업에 대해 나이든 세대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그들이 테슬라라던가 전고체 배터리나 인공지능같은 것을 얼마나 알겠는가? 이 말들은 다시 말하면 한국 사회가 이제까지 지식중심이기 전에 여전히 자본중심의 낡은 체재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투자는 그간 완전히 부동산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었다. 땅은 시간이 걸릴 뿐 절대 떨어지지 않으므로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부정적으로 보면 땅투기를 불러온 심리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한국의 토지 시장을 안정화시킨 심리였다. 왜 한국 사람들은 주식은 사기나 도박처럼 여기면서 땅이라면 무조건 안전하다고 생각할까? 그건 주식은 오른만큼 내리거나 아예 망해서 회사가 없어지는 일도 있지만 땅의 가치는 긴 기간으로 놓고 보면 우상향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다. 이익을 못본 사람들은 많을 지 몰라도 본전보다도 땅값이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부동산 가격이 반토막나는 그런 급격한 변화는 거의, 정말 거의 없다.

 

이에 비하면 한국 주식시장은 그리고 특히 개별종목으로 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폭등과 폭락이 거듭되는 곳이었다. 이는 다르게 말하면 한국 주식시장에는 주인이 없고 뜨내기 사기꾼들만 넘쳐나는 곳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회사에 투자해서 정말 10년 20년 기다리겠다는 사람은 없고 길어야 몇주, 짧으면 몇일만에 샀다가 팔아서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나니 소문 하나에 주가가 폭등하고 소문하나에 주가가 폭락하는 일이 많았고,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실적이 좋아도 그게 주가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2020년은 중요한 해였고 한국 경제의 체질이 바뀌기 시작할 수 있는 해였다. 한국 주식 시장에 주인들이 생기게 되면 그들은 이제 안정적인 투자처로 여겨지게 될 것이고 이는 한국 경제가 토건중심이 아니라 기업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말이다. 경제여건이 달라지면 이는 정치와 문화를 뿌리부터 바꿔나갈 수 있다. 앞에서 세대간의 차이에 대해서 말했지만 언론문제의 핵심도 결국 돈이다. 누가 어떻게 돈을 벌어서 어떻게 쓰는가가 정치와 문화의 환경을 바꾼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국가자본내지 민족자본이라고 할 신뢰와 본전의식이 존재한다. 따라서 이들은 고맙게 여겨져야 하는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개미니 주린이니 하는 용어를 쓰면서 개인투자가들을 비하하는 시각이 있는데 이는 위험한 것이다. 그런 시각의 바탕에는 주식 투자는 투자가 아니라 도박이며 자신들은 뛰어난 도박꾼인데 어수룩한 도박꾼들이 도박판에 왔다는 식의 시각이 일정부분 깔려 있다. 하지만 이는 시대착오적이다. 시대적 과제는 도박을 잘할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도박이 아니라 한국의 미래에 투자를 할 사람을 모으는 것에 있다. 

 

사실 외국인 투자가들이 한국에 얼마나 애정과 애착이 있겠는가? 그들은 필요하다면 한국 경제가 폭락과 폭등을 거듭하는 혼란이 일기를 바랄 것이다. 없는 혼란도 일부러 만들고자 할 것이다. 그렇게 시장이 흔들려야 돈을 빼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20년은 이런 외국자본이 민족자본이라고 할만한 개인투자가들에게 패배한 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한국도 위험하다고 주식을 던질 때 그걸 받아서 돈을 번 것이 개인투자가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을 흔들려는 외국자본에 대한 민족자본의 승리다. 

 

한국이 변하려면 이건 중요한 흐름이다. 아파트가 한채에 천억을 한다고 해서 그걸로 한국이 부자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어디까지나 기업이 성장해야 나라가 살고 국민도 사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민족자본내지 국가자본이라고 할 다수의 개인투자가들이 기업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그래야 한국성장의 열매도 골고루 나눠질 수 있다. 

 

한국 회사의 주식 대부분이 외국의 것이라면 그 회사는 성장하기 어렵고 성장해도 의미가 별로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중국자본을 생각해 보면 이걸 알 수 있다. 중국자본으로 컨텐츠만들고 놀이동산만들어서 한국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책임감이 없고 한국성공의 핵심인 한국을 빼먹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야 말로 투기자본인 것이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애정과 책임감이 있는 자본이다. 2020년은 이런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 한해였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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