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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국경선

by 격암(강국진) 2021. 5. 24.

직업의 종말을 쓴 테일러 피어슨은 각 시대별로 가장 소중한 자원이 무엇인가를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국경선의 의미를 더 커지게 만든 코로나가 터지자 그의 목록은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표를 보면 시간순으로 처음에는 토지가 중요했지만 그 다음은 자본이었고 그 다음이 지식이었으며 마지막으로 오늘날은 창업가 정신입니다. 이것은 시대별로 가장 중요한 자원이 이렇다는 것이지 이런 자원들이 지금은 안 중요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부동산 문제가 한국을 비롯한 세계를 뒤흔드는데 토지가 안 중요할 리가 있으며 자본이 안 중요할 리가 있겠습니까? 과거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우리 안에 남아 있습니다. 다만 새로운 것이 출현하고 그것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토지만 중요했지 돈이 있어도 쓸 곳이 별로 없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관계는 지금 역전되었다는 겁니다. 이제는 자본이 더 중요하고 토지는 덜 중요합니다.  왜냐면 자본은 훨씬 자유롭게 흘러다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빨리 바뀌고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때 자본은 좀 더 빠르게 움직여 그 기회를 잡습니다. 하지만 토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방에서 땅만 들고 있던 사람들은 그걸 자본으로 바꿔 서울에서 사업을 벌였던 사람들에 비해 뒤로 쳐지게 되는 것이죠. 

 

토지는 당연히 국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땅은 중국땅이고 한국땅은 한국땅이니까요. 그렇다면 자본은 국적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강원도 차이나타운 사건이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제주도에 들어온 중국자본 이야기도 한국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립니다. 그러니까 독일 마을이나 프랑스 마을에 비하면 중국 차이나 타운이 들어서는 것은 불안한 겁니다. 비슷하게 한국 사채시장에 일본 자본이 들어와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말하죠. 자본은 필연적으로 인간을 끌고 들어옵니다. 신뢰가 무한정일 수는 없으니까 사람이 와서 그 자본의 사용과 반납에 대해 관여하게 됩니다. 중국자본이 유입되면 그곳은 작은 중국이 되는 겁니다. 자본은 채무관계를 통해 지배력을 발휘하고 따라서 어떤 나라의 자본은 받기가 두렵지가 않은데 어떤 나라의 자본은 두려워집니다. 나라가 아니라 개인으로 봐도, 조폭의 돈을 빌리건, 대학교수의 돈을 빌리건 돈은 돈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죠.

 

그렇다면 기술이나 지식은 어떻습니까? 지식이나 기술은 자본에 비하면 훨씬 지역성이 약합니다. 중국돈을 받으면 찝찝하지만 중국기술을 우리가 도입했다고 해도 그것이 자본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상황은 다릅니다. 중국이 나침반을 발명했다고 그 지식을 우리가 쓰면 중국에게 종속되는 것은 아니죠. 뉴튼이 뉴튼물리학을 발표했지만 영국이 싫으니 물리학을 거부하자고 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기술이나 지식은 훨씬 더 보편적입니다. 

 

이 보편성은 코로나 시대에 더욱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흐르지 않는 것은 썩고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는 세계의 소통에 일종의 걸림망을 만들었습니다. 기술이나 지식은 이 걸림망을 잘 통과합니다. 하지만 해외여행이 사라진 시대에 토지의 의미는 축소되었고 자본도 그렇습니다. 일본의 존재감이 급락하는 것에는 이런 점들이 크게 작동합니다. 한마디로 지역성이 너무 강한 일본은 국가간의 흐름이 더 어려워지자 질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일본은 여전히 토지와 자본으로 사는 나라였달까요. 미일정상회담을 해봐도 미국에게 일본이 해줄게 별로 없습니다. 한국처럼 백신, 자동차, 배터리등에서 협업할 수 있는 분야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미일 정상회담의 결과문을 보면 미일정상회담인데 하는 이야기는 중국이야기밖에 없습니다. 

 

테일러 피어슨이 말하는 창업가 정신은 국경을 초월하는 경제질서에서 필요한 창의력과 비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본은 막을 수 있습니다. 지식도 우리가 따로 개발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자국을 세계의 인터넷 망에서 떼어내서 자신들만의 인터넷을 하겠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세계 시장에서 자기를 떼어내 자기들만의 경제권을 만들겠다는 생각도 어리석은 것이죠. 테슬라는 전기차를 미국에만 팔지 않습니다. 세계에 팝니다. 삼성도 스마트폰을 전세계로 팔아야 합니다. 

 

이는 물론 지식과 기술의 문제이기도 합니다만 단순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 이상으로 비전의 문제입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스티브 잡스와 일론 머스크입니다. 이 둘은 세계를 뒤흔들 사업을 일으켰지만 둘 다 사실은 기술자가 아닙니다. 스티브 잡스가 프로그램을 짜는 것도 아니고 아이폰을 디자인 하는 것도 아니며 일론 머스크가 자동차를 만들고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이 둘은 전체적인 그림에 대한 비전과 감각을 가진 겁니다. 말하자면 자잘한 기술과 지식들을 모아서 큰 사업을 일으킬 비전이 기술과 지식 자체를 능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겁니다.

 

미국이 핵무기를 만들면 그 기술은 자기만 가지려고 할 겁니다. 하지만 페이스북을 만들면 기술과 노하우를 독점하려는 것과 동시에 개방이 필요합니다. 한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에서도 그 페이스북을 쓰게 해야 하는 겁니다. 한국의 포털을 지키는 것은 기술이 아닙니다. 기술은 돈이 있으면 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 포털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플랫폼을 먼저 선점하는 비전이 중요하지 이미 누군가가 시장을 장악하고 나면 그걸 뒤집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겁니다. 결국 창의적인 생각 하나가 세상을 바꿉니다. 테슬라나 비트코인의 성공은 단순히 기술의 성공이 아닙니다. 믿음과 비전의 성공입니다.

 

코로나 시대에 세계 각국이 더욱 목말라 하는 것도 이것입니다. 돈은 애초에 문제가 아닙니다. 기술이나 지식도 필요하다면 구해오고 개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사업, 새로운 경제질서를 만들 미래 비전이 없으면 그것들의 가치는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코로나가 이 점을 극대화시켰습니다. 그래서 저 대단한 미국도 한국을 다시보고 더 대우해 줍니다. 중국의 개혁성에 밀린 그들은 한국의 개혁성을 빌리고 싶은 겁니다. 

 

 중국은 이해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인공지능과 무선통신, 전기차와 우주개발등 여러가지 분야에서 중국은 미국의 개혁성을 앞서나간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매우 보수적이고 소통이 불가능한 나라죠. 세계와 엄청난 무역을 하면서 동시에 세계로부터 동떨어져서 혼자 힘을 키우겠다는 태도를 취하기도 합니다. 저는 중국의 장래는 밝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마치 암과 같습니다. 빠르게 성장하지만 다른 나라들을 먹어치우는 제국주의적인 모습을 가집니다. 중국의 성장이 세계의 다른 사람들에게 싼 물건을 공급할 때는 좋았지만 이제는 중국과 중국 이외의 나라가 공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는 것같습니다. 중국에게는 보편성이 너무 부족합니다. 

 

국경선이 중요한 코로나 시대지만 그 점은 국내적으로도 의미를 가집니다. 코로나 시대에 일본의 존재감이 사라지듯이 국내에 존재하는 세력들도 코로나 시대에 존재감이 달라지게 될 겁니다. 대면접촉을 강조하고 보수적이고 토지와 독점적 자본에 의지하는 세력은 보다 투명하고 소통을 강조하는 세력에 비해 더 불리해 질 겁니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질 수록 그들의 국내적 설득력은 약해지겠죠. 세계적으로도 위에서 말한 토지, 자본, 지식, 창업자정신들은 여러가지 차원에서 싸움을 벌입니다. 그 싸움은 국내에서도 계속될 것이고 힘의 균형은 달라질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코로나가 없었어도 일어날 일들이지만 코로나는 그 미래를 더 빨리 가져오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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