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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정령치 휴게소

by 격암(강국진) 2021. 6. 9.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휴게소로 알려진 지리산 정령치 휴게소에서 차박을 했다. 숲을 보고 싶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별을 보고 싶어서 간 것이었다. 지리산은 그 높이보다 그 지역의 광활함때문에 유명하다. 말하자면 설악산 같은 곳보다 더 넓은 지역에 산악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리산에 가면 예전과는 다르게 이미 도로가 잔뜩 깔려있는 곳이지만 왠지 깊은 정글안에 있는 오지에 가는 느낌이며 도로 옆에 펼쳐진 나무들을 보면 아무도 손대지 않은 원시림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이번에 차박장소를 고르면서 나는 성삼재 휴게소와 정령치 휴게소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정령치 휴게소는 전에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그 이름으로 더 별을 잘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정령치를 선택했다. 

 

 

우리는 평일 6시가 넘어서 지리산으로 출발했다. 서울이라면 불가능하지만 전주에서 정령치 휴게소까지는 90킬로미터정도밖에는 되지 않는다. 물론 구불구불 산길을 올라야 하니 속도는 낼 수 없고 그 길은 전혀 컴컴한 밤에는 달리고 싶지 않은 길이었다. 실제로 나는 길 옆의 도랑에 빠진 차를 한대 보기도 했다. 정령치 휴게소로 가는 길은 굉장히 구불구불하며 당연히 계속 오르막길이다. 

 

드디어 정령치 휴게소에 도착. 본래는 주차장에 돈을 내야 한다는데 사람도 없고 평일이라선지 주차장을 그냥 개방해 두었다. 우리 말고 단 한대의 차가 있었는데 그 차도 저녁 노을을 보더니 사라지고 말았다. 

 

 

정령치 휴게소는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때마침 해지는 시간에 도착한 우리는 정말 오랜동안 이정도 아름다운 일몰은 볼 수 없었다는 말이 나오는 멋진 일몰을 구경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본 일출도 좋았다.

 

 

그러나 정령치 휴게소는 사실 성삼재 휴게소에 비하면 간이휴게소같은 느낌을 주는 작은 장소다. 매점도 있다고 하는데 적어도 평일에는 닫혀있고 날벌레와 모기가 많다. 화장실도 낡은 것이 있어서 요즘은 새 화장실을 지었다. 새화장실은 훌룡하고 더러워서 못쓰는 것과는 거리가 아주 멀지만 호텔같은 곳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관리동이 하나 있는데 내가 간 날에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불빛은 있으나 잠겨있었다. 

 

우리는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차의 뒤쪽에 매트를 깔았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모기가 많아서 이거 굉장히 괴로운 밤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차가 뜨거워서 모여든 것일뿐이었나 보다. 차가 식자 모두 사라졌고 우리가 모기에 괴롭힘을 당하거나 물리는 일은 없었다. 비슷한 일은 아침에도 있었는데 사라졌던 벌레들이 아침에 해가 뜰 무렵에는 차옆에 잔뜩 나타났었다. 그러다가 해가 조금 더 높아졌나 싶으니까 또 거짓말 처럼 다 사라졌다. 유쾌하지는 않지만 조심하면 벌레는 피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차 바깥에서 의자를 놓고 경치를 감상할 때는 신경이 쓰이기는 했다. 

 

일몰을 감상한 후 차에서 넷플릭스를 보면서 우리는 저녁삼아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는 폰이나 아이패드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밤이 깊어지자 이제 우리가 가장 기대하던 별이 보였다. 그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별들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몇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로 별사진은 찍을 수 없다. 사진기로는 잡히는 게 없다. 적어도 핸드폰으로는 안된다. 둘째 내 시력에도 문제가 있다. 안경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니 안경의 위치에 따라 하늘의 별이 또렷하게 보이는 정도가 상당히 달랐다. 결국 노안이 온 우리 부부가 아름다운 별을 보는 것에는 제약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별을 감상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나이가 들었음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모델y는 천장이 유리로 되어 있지만 색조유리이기 때문에 아주 밝은 별이 약간 보이는 정도다. 그러니까 별들이 보이는 밤에 야외에서 잔다고 천장에 쏟아지는 별이 보이지는 않는다. 나중에 별보기로 유명한 육백마지기에도 한번 가서 비교해 보고 싶다.  

 

별보기를 마치고 잠이 들었나 싶었다가 깨어보니 어느새 아침 해가 밝았다. 서둘러 일출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고 다시 누워보니 하늘의 구름 모습이 장관이다. 

 

 

우리는 7시쯤에 짐을 정리하고 다시 전주로 향했다. 오는 길에 계곡옆의 정자에 앉아 잠시 지리산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어딜 가나 요즘은 그렇지만 지리산의 초록도 참 짙었다.  

 

 

다시 전주로 돌아오니 9시가 조금 넘었다. 이번에는 저녘 6시에서 아침 9시까지의 여행이 된 셈이다. 정령치에서 본 일몰의 해는 장관이었다. 나는 그렇게 크고 선명한 해를 정말 오랜만에 봤다. 어쩌면 내가 평생 본 일몰중에서 가장 선명하고 멋진 일몰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리산의 깊음도 약간 맛본 정도지만 좋았다. 역시 나는 숲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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