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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작고 큰 것 사이의 모순들

by 격암(강국진) 2021. 8. 2.

21.8.2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고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있다. 또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도 있다. 같은 의미의 말들은 아니지만 이런 종류의 말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작고 사소한 것들이 크고 중요한 전체를 결정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미리 말하지만 이 말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말들이 그렇듯 이 말들도 어떤 특정한 문맥에서만 옳지 절대적 진리는 아닌데 워낙 이런 말들이 세상에 흔하다보니 이 말들의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같다. 

 

내가 자주 이야기하는 옛날 이야기가 하나 있다. 30년도 넘은 이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나는 한 때 공공주차장에서 돈을 받는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보면 경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그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데 당시에는 고급차의 대명사였던 그랜저 같은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주차비를 항의하고, 심지어 주차요원을 차로 위협하면서까지 돈을 내지 않으려고 하는 일이 많았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해주면서 이렇게 잔돈도 악착같이 쓰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부자가 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럴듯하다며 동의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결론은 절대 명확한 것이 못된다. 우리는 전혀 다른 이야기에도 익숙하다. 그것은 사람이 대범하다던가 스케일이 다르다같은 말이다. 이런 부자들은 운 좋아 한탕으로 부자되었으며 그 재산을 유지할 능력도 부족한 졸부들일지 모른다. 사람은 크고 중요한 일과 작고 사소한 일을 구분하여 중요한 일을 꼭 잘해내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크건 작건 모든 일을 잘하면 되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대개 한가하고 변화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야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런 삶에 익숙한 나머지 일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구분하지 못하므로 진짜 크고 중요한 일을 하기는 어렵다. 한마디로 5백원가지고 자기 삶을 낭비하는 사람은 큰 일을 못한다는 말이다. 

 

앞의 이야기가 옳을까, 뒤의 이야기가 옳을까? 물론 답은 경우마다 즉 문맥마다 다르고 어떻게 이해할까 하는 것은 본인의 책임하에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문제는 단순히 어떤 말이 옳은가 틀린가가 아니며 그 말에 관련된 주변 사항들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는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깊은 이해가 있는가운데 구체적으로 어떤 결단의 순간이 오면 미리 결정해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와 가슴이 말하는대로 그때 그때 다시 판단해야 한다. 

 

이제 약간 다른 예를 생각해 보자. 세상에는 자신이 꾀가 많다고 생각해서 편법을 찾는데 익숙한 사람들이 많다. 남들이 군대를 가는데 자신은 가지 않을 방법을 찾고, 남들이 세금을 내는데 자신은 내지 않을 방법을 찾으며, 남들이 줄을 서는데 자신은 줄을 서지 않을 방법을 찾는다. 그리고 그렇게 할 방법을 찾아내면 그런 자신을 은근히 자랑스러워 한다. 물론 그런 편법은 종종 반사회적이므로 크게 자랑할 일은 되지 못하지만 남들 하는대로만 하면서 자기 몫을 챙기지 못하는 사람들보다 자기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도 앞에서 말한 예와 비슷하게 해석의 가능성은 작고 크게 둘로 갈라져 있다. 그 중 한가지 해석은 우리는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건 그 일은 대개 세부적인 작은 일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그 세부적인 일들을 모두 철저히 하려고만 하면 항상 문제가 생기게 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철저히' 라는 말의 의미다. 이 말을 흑백으로 극단으로 밀어부쳐서 이해하는 사람들은 흔히 아주 작은 난관이나 문제가 생겨도 그걸 해결하지 못한다. 소위 메뉴얼대로, 시키는대로만 하던 사람들의 문제가 이것이다. 

 

오늘 저녁 파티가 있고 거기에서 쓸 술이 필요하다고 하자. 그런데 술을 사려고 보냈더니 한참만에 돌아와서는 그 술집이 오늘은 장사를 하지 않는다거나 오늘은 그 술집에 늘 먹던 술이 없고 비싼 술만 있어서 그냥 왔다는 말 뿐이면 파티 준비는 엉망이 되고 만다. 만약 전체적인 맥락에서 그걸 이해했다면 그 사람은  다른 곳에 가서 술을 구해왔거나, 비싸더라도 일단은 그 술을 사왔을 것이다. 술값이 조금 더 드는 것보다 파티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냥 상점 A에 가서 이러저러한 술을 산다는 명령만 수행하려고 하고 메뉴얼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 다시 명령을 들으려고 돌아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흔히 융통성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융통성이 있는 사람을 우리는 종종 어떻게든 일이 되게 하는 사람이라고도 부른다. 세상 경험이 좀 있는 사람들은 안다. 어떻게든 일이 되게 하는 사람은 정말 소중하다. 어떻게든 일이 되게 하는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은 현실에서 정말 아무 쓸모가 없다. 어떤 일을 하건 거기에는 항상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고, 더 큰 이익을 위해서는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가치판단의 순간이 발생한다. 앞에서 사람이 죽는데 단순히 교통신호는 지켜야 한다면서 사람이 죽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는 식의 사람이 되어서는 쓸모가 없다.  

 

어떤가. 이 융통성의 이야기가 그럴듯한가? 하지만 이야기는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융통성 좋아하는 사람들은 종종 모든 상황에서 지름길을 찾는 경향이 있다. 크게 봐서 일을 되게 하는 능력이 융통성이라고 말했지만 어떤 의미에서 더 크게 보면 융통성은 일을 안되게 만드는 능력, 자기를 망치는 능력이기도 하다. 

 

선거철이 되어서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게시판에 가보면 언제나 나오는 말이 현실론이고 종말론이다. 여기서 말하는 현실론이란 명분과 준법정신과 도덕따위는 무시하고 일단 이기고 봐야 한다는 말이고, 종말론이란 이번 선거에서 지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말이다. 물론 실제로 종종 벌어지는 일은 선거도 질뿐만 아니라 명분도 잃어버리는 일이다. 그리고 선거에 졌지만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 나라도 완전히 망하지는 않는다. 종말론도 틀린 이야기다. 하지만 스스로 꾀많고 융통성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실론과 종말론을 말하며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일단 이겨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독이든 사과를 삼키는 한이 있어도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는 타협이고 협상이라는 말도 한다. 

 

 

이런 말들은 다 틀린 것도 아니고 설득력도 굉장할 때가 많지만 사실 크게 보면 아주 바보같은 소리일 때도 많다. 그래서 일찌기 2천년전에 노자는 이런 말들을 남겼다.

 

세상사람들은 모두 영특하고 똑똑하건만 나만 홀로 우둔하고 멍청하도다. (노자 20장)

대도는 지극히 평탄하건만 사람들은 옆길을 좋아하는 도다. (노자 53장)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직접 하지 않고 베껴서 대신하는 학생을 본다면 어른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물론 때에 따라서 저런 일도 이익이 될 수도 있겠지만 설사 들키지 않는다고 해도 늘상 숙제를 안한다면 결국 공부를 안하는 것이니 성적이 떨어질 것이고 길게 보면 자신에게 해가 될 것이다. 설사 수업을 안듣고 졸업장을 받을 방법이 있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받는 졸업장이 쓸모 있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노장의 이야기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더 크게 보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세상은 이처럼 크고 넓은데 좀스런 꾀로 가득찬 사람들이 잘난 척하면서 자신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는 것이다. 소위 융통성있는 길이란 이런 길이다. 어떤 실패는 융통성없는 바보의 실패로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진짜 성공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될 때가 있다. 그렇다면 누가 바보인가?

 

정답은 없다. 우리는 유한하고 언제나 경계에 서있다. 우리는 무한히 성장할 수 없지만 또 더 큰 나를 꿈꾸는 일을 멈춰서도 안된다. 그래서 때로는 작은 것을 꼼꼼히 챙기고 일이 되게 만들어야 하지만 때로는 대범하게 누구나 바보같은 길이라고 말하는 길도 가야 한다. 이 작고 큰 것의 모순은 패러다임의 문제라고도 말할 수 있다. 당신이 지금의 패러다임에 충실할 때 당신은 효율적이고 성공적으로 살 수 있다. 하지만 그 충실성이 당신이 지금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서 더 큰 인간이 될 가능성을 해칠 때도 있다. 초등학교때 최고의 학생이 되겠다고 생각한 사람, 실제로 최고의 학생이었던 사람이 나중에 보면 그 초등학교때의 자기에서 벗어나질 못해서 좀 모자란 어른 처럼 보일 때도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작고 큰 것을 모두 챙기겠다는 말은 그다지 현실적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쪽도 포기할 수가 없다. 그게 산다는 것이고 그래서 이것은 모순이라고 부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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