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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우리시대의 혁명

개혁, 그렇게 해도 될까?

by 격암(강국진) 2021. 8. 17.

최근에 김어준의 다스뵈이다를 잠깐 들었다. 아내가 참 좋은 이야기같다면서 나에게 박태웅 한빛미디어 의장의 말을 듣게 했기 때문이다. 과연 운전중에 들어서 잠깐 들은 것이지만 좋은 말이 많았던 것같다. 하지만 이 글은 박태웅의 말을 칭찬하는 글도, 엄밀히 말하면 박태웅의 말에 대한 글도 아니다. 흔히 그렇듯 그것이 시초가 되어 내 생각은 다른 곳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내가 들은 부분은 관료개혁에 대해서 그가 말한 부분이었다. 그가 지적하는 부분은 두 가지로 하나는 관료는 정권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기 때문에 개혁에 저항하는 경향이 있어서 정부와 장관의 개혁도 좌초시키는 기득권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 관료가 실질적으로는 조선시대 과거나 다름없는 일반론적인 교육만 받아서 뽑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사회에 맞는 전문성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행정고시 과목들을 보고 있으면 그 사람들이 과연 첨단 기술에 대해 뭘 알까 걱정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는 그의 지적이 훌룡한 것이며 특히 다음 정권의 큰 과제가 관료개혁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의 지적에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두가지 부분이 있다. 첫째로 그의 지적은 인적 교체내지 규제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로 여전히 적절히 교육받은 사람을 선발하여 어떤 일에 써야 한다는 낡은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히 관료개혁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고 개혁의 일반론 그러니까 교육개혁이나 사법개혁, 재벌개혁등 모든 분야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정리해서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박태웅은 사회의 기본적 장치로서 견제를 말한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한다면서 견제받지 않는 곳은 견제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은 옳은 말이지만 우리가 이런 말을 듣다보면 기존사고방식의 함정에 빠지는 문제가 있다. 즉 문제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견제와 감시니까 그걸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의 개혁도 중요하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를 불러오는 개혁은 아예 새로운 게임을 하는 것이다. 게임의 법칙이 달라지면 낡은 부패와 적체된 모순은 무너진다. 그리고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불러 오는 것의 핵심은 정보고 조직의 구조다. 공무원이 하는 일이 보다 더 투명해지면 거기에 대해 조언하고 논평할 수 있는 전문가는 우리사회에 많이 있다. 애초에 그런 감시는 언론이 하는 것이지만 기성언론을 통한 감시와 평가는 제대로 정보가 흐르지 않는 것같다. 그래서 더 투명하게 더 단순하게 라는 말이 그렇게 간단히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적 교체와 견제와는 다른 방향이며 사실 인적 교체와 견제란 어떻게 말하면 고을 사또가 무능하니 더 좋은 사또를 뽑자고 하는 말과 같다면 정보와 조직의 개혁은 아예 봉건구조 자체가 문제니까 그걸 교체하자는 말과 같다. 그러므로 더 철저한 개혁은 후자의 경우에 달성되는 것이다. 

 

한가지 예로 생각해 보자. 이 정부에서 가장 공들인 법이 있다. 바로 공수처법이다. 사법개혁에 있어서 이 법은 바로 견제받지 않는 사람들을 견제하겠다는 법이다. 나는 이 법에 반대하지 않지만 이 법만으로 세상이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실제로 그 법이 만들어 지니까 세상이 지금 엄청나게 바뀌고 있는 것같은가? 다 사람이 하는 일이며 법에는 항상 구멍이 있다. 

 

내가 알기로 박태웅은 다른 곳에서 아주 좋은 지적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그 판례가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지 않아서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어떤 재판을 어떻게 구형하고 선고했는지가 디지털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져서 투명하게 검색할 수 있게 되어 있지 않다. 그 덕분에 판례를 찾는 것에서도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엉터리 판결을 내린 역사가 감춰지기 쉽다. 그런데 진정한 사법개혁이 공수처법으로 이뤄질까 아니면 이런 판례 정보 공개로 이뤄질까? 나는 지금 후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우리가 견제와 인적 교체같은 것에 매몰되면 그런 부분이 망각되어 시간만 낭비할 뿐 진정한 개혁이 이뤄지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은 관료개혁도 마찬가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행시같이 일반론자를 뽑는 시험이 아니라 보다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관료가 될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리고 아주 그럴듯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컴퓨터 행정 시스템같은 것을 구축하는데 행시통과해서 공무원된 사람이 개념이 엉망인 경우가 있으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그러나 그런 지적도 현실에 대한 보완적인 측면에서만 일리가 있을 뿐이다. 진실이지만 작은 진실일 뿐이다. 행시를 폐지하고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을 뽑자고 개혁을 한다면 그런 개혁은 기득권의 반대로 실천되지도 못하고 반대에 부딪힐 뿐더러 설사 된다고 해도 불필요한 혼란 끝에 지금보다도 더 못한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다. 공무원을 더 잘뽑는게 아니라 훨씬 불만족이 올라갈 것이다. 지금의 복잡한 대학입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불만족인 것처럼 말이다. 

 

나는 여기서 작은 아이러니를 지적하겠다. 일반론자를 비판하는 박태웅은 경영학과를 나온 사람이다. 그리고 그 지적을 비판하려고 하는 나는 물리학과 학부를 졸업했을 뿐만 아니라 물리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내 말은 언뜻 보면 더 좁은 영역에서 전문가스러운 지식을 쌓은 사람은 나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행시같은 것으로 사람뽑는 것을 옹호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 것, 행시같은 것에 훨씬 가까운 것같은 박태웅이 그 반대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 내가 말하는 아이러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정말로 주장한다면 사람들은 지적할 것이다. 대학의 전공과목이 다가 아니라고 그 이후에 그 사람은 많은 것을 보고 들었고 배웠다고. 그리고 그게 바로 내가 말하는 것이다. 사람은 배울 수 있다. 배울 재능과 의지가 있다면 모두가 천재 기업가나 천재 과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까지 다시 말해 훌룡한 관료가 될 수 있는 수준까지는 배울 수 있다. 사실 물리학의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해서 훌룡한 물리학전공자를 관료로 만드는 것은 물리학을 아는 사람들은 다 반대할 것이다. 진정으로 훌룡한 물리학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 진짜 엉터리 관료의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3류의 물리학 재능을 가진 물리학 전공자만이 훌룡한 관료가 될 것이며 이는 아마도 다른 학문이나 전문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가인 일론 머스크를 대통령 시키면 미국은 치명타를 받을 것이다. 필요한 재능이 같지 않다. 

 

내가 하고싶은 말을 다시 정리하자면 이렇다. 첫째로 섯불리 너무 큰 인적교체와 견제를 하는 것에 목매지 말라. 이것은 교육과 선발의 문제를 포함한다. 그런 개혁은 되지도 않지만 설사 겨우 법제화에 성공해도 큰 혼란만 남길 뿐 좋은 세상이 오지 않는다. 그런 분야에서 세상은 오직 한발씩 한발씩 좋아질 뿐이다. 지금이 맘에 안들어도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중 일부를 교체하고, 일하는 방식을 조금 바꿔가야지 어느날 싹 다 뒤집어 새롭게 하고자 하면 책상위에서는 그것이 그럴듯해도 현실에서는 엉망이다. 흥미가 있을 법한 사람들에게 말해주자면 이것이 베이지안 방식이다. 지금의 예산안이 마음에 안든다고 그걸 전부 뒤집어서 내년예산부터는 완전히 제로에서 시작시키면 재앙이 온다. 누적된 노하우를 무시하면 안된다. 

 

둘째, 반면에 진짜로 세상을 크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게 정보개혁이다. 물론 이것도 쉽지는 않다. 노무현때 사학법때문에 난리가 난 것을 기억하는가? 그 법의 핵심은 사학재단의 운영투명화였는데 거의 나라가 망해도 그건 안된다는 식의 반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세상은 기술적으로 달라지고 있어서 사실 정보는 지금도 여기저기서 새고 있다. 그러니까 그런 반대는 계속 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 인간은 계속 일해야 하고, 일 하지만 세상은 10년 20년이면 기술적으로 말도안되게 진보하는 것이 지금이다. 그 방향으로 고민하는 것이 없으면 세상은 확 바뀌지 못할 것이다. 견제니 감시니 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걸 무력화시키는 것은 쉽다. 다 인간이 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산업혁명에 저항하는 것은 어렵다. 그건 시대적 변화이기 때문이다. 

 

편의상 존칭없이 박태웅이라는 이름을 그냥 썼고 형식상 이 글은 박태웅 의장을 비판하는 것으로 들릴지 모른다. 찬찬히 읽은 분들은 알겠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나는 사실 그의 주장을 모두 검토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의 주장을 짧게 들으면서 한국의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빠지는 함정들이 생각났고 그것에 관해 쓰고 싶었을 뿐이다. 제발 규제나 감시나 더 복잡한 개혁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그보다는 세상이 바뀌게 되는 물꼬가 어딘지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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