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10
세계는 점차 도시화되어가고 있다. 21세기의 삶을 누군가에게 설명하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대개 수없이 많은 도시들에 대한 묘사에 긴 시간을 쓸 것이다. 많은 현대인은 도시인이다. 미디어에서는 더욱 그렇게 보여진다. 이 말은 모두는 아니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도시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도시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여겨진다는 뜻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경제적으로 어느 쪽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가를 보면 안다. 물자와 돈은 도시로 흐른다. 서울에는 10억 20억이 안되는 아파트가 없다고 할 정도로 집값이 비싸다. 도시에서 살기 위해 사람들은 이런 주거비를 기꺼이 낸다. 이렇기 때문에 시골은 사실 도시의 식민지같은 곳으로 존재한다. 인적 물적 자원이 시장논리에 의해 수탈되기 때문이다. 성공하려면 도시로 가야한다. 시골의 생산품들은 돈이 안된다. 그러다보면 시골의 땅조차도 사실은 도시사람의 것이 된다. 즉 시골에서는 돈을 버는 효율이 좋지 않고 도시의 돈이 시골을 지배하게 된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식민지화다.
이런 당연한 것을 왜 지적할까? 그건 우리의 미래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만약 백년전의 사람을 타임머쉰을 태워 데려와서 지금의 시골과 도시를 보여주고 어느 쪽을 선택할래라고 묻는다면 그 사람은 십중팔구 시골을 선택할 것이다. 이 말이 믿기 힘들다면 더 극적인 예를 생각해 보라. 타잔처럼 수렵채집인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어느 쪽을 선택할까? 도시? 농촌?
과거의 사람은 우선 현대의 도시가 주는 이점과 매력을 거의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애써 백화점이 좋다던가, 자동차가 멋지다던가, 고층빌딩이 좋다고 할 것이고 그는 아마도 그것들이 신기하다고 여기겠지만 그는 십중팔구 그런게 왜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하고 그걸 그다지 멋지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할 것이다. 반면에 그는 현대 도시가 가진 약점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기 쉽다. 우선 그는 공기의 질이 나빠서 잠시도 도시에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현대인은 그게 조금 불편하고 나쁜 것정도로 알지만 그 사람에게는 마치 불났을 때 나오는 연기속에서 계속 버티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무리한 요구일 수 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나면 지하철이 좋니 고층빌딩이 좋니 하는 말은 다 하나 마나한 소리가 된다. 물맛도 엉망이라고 할 지 모른다. 그러니 그에게 현대의 산해진미가 그다지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피자같은 신기한 음식이 그에게는 석유냄새가 펑펑나는 쓰레기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시골과 도시를 보여주면 그 과거의 사람은 신기한 것이 어느 정도 있으면서도 그나마 더 버틸만한 시골이 더 좋아보일 것이다.
만약 이런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면 우리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는 지금의 우리가 과거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세상은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변하고 있다. 21세기의 30년이라면 18세기의 백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변하는 시간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30년뒤에는 조선시대에서 현대로 불려온 사람처럼 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 좋아하는 것이 많아지는 세상이 미래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30년뒤의 우리는 지금의 우리가 시골보다 도시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그 때의 미래를 만족하게 여길 수 있지만 그 모습은 지금의 우리에게는 이해도 되지 않고 심지어 끔찍한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핵심은 새로운 가치, 새로운 경제활동이다. 상업이나 공업은 모르고 농업이 천하의 근본이라고 믿었던 시대에는 그저 풍년이 들어서 쌀이 넘쳐나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겠지만 이제는 전보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쌀농사를 짓는데도 그 쌀이 소비를 못해서 문제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지금 그것때문에 행복해하지는 않는다. 산업의 중심과 사람들의 관심은 농업에서 공업으로 서비스업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사람은 BTS같은 가수가 엄청난 돈을 버는 것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그 BTS 콘서트를 인터넷으로 본다고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을 더욱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현대인들이 농촌보다 도시를 선호하는 이유는 도시에는 일자리가 있고 여러가지 산업이 있기 때문이다. 정보집약적인 도시에는 더 많은 놀이시설도 있고, 교육시설도 있다. 다양한 가게들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며, 보다 현대적인 주거에서 가장 최근의 유행을 따라가는 생활을 할 수 있다. 농촌에서는 프로야구선수로 산다던가 통역자로 사는 것같은 일자리는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사실 세상은 도시화를 계속 추구하는게 아니라 이번에는 사이버화를 추구하게 되었다. 농촌경제보다 도시경제가 더 커진 것이 과거의 흐름이라면 지금의 흐름은 오프라인 공간보다 온라인 공간의 경제가 더 커져가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세상을 보면 도시와 농촌간의 차이는 크다. 이 말은 여전히 오프라인 공간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비싼 도시부동산 가격을 감당하면서 거기에 사람들이 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30년뒤는 어떨까? 물론 그때의 우리는 전쟁으로 멸망했거나 기후위기로 경제발전이 없어서 지금과 별로 다를바 없이 살 수도 있다. 언제나 최근의 변화를 미래로 투사하는 것에는 이런 위험이 따른다. 하지만 사이버화가 계속될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이며 이것은 심지어 기후위기같은 요소로 인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위기는 재택근무를 증가시켰다. 그런데 만약 기후위기와 싸우기 위해 만들어 낸 정책들이 교통비를 지금보다 10배 올린다면 그것도 재택근무를 증가시키지 않을까? 그렇다면 방법은 우리가 모두 사이버 공간으로 들어가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지 않은가?
기후위기의 원인이 인간이라면 다가오는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의 소비를 줄이는 것뿐이다. 덜먹고 덜움직이고 옷도 덜입어야 기후위기를 잡을 것아닌가. 이걸 이룩하는 방법은 자연히 우리의 경험을 가상화하는 것이다. 먹는 대신 먹는 체험을 가상화하고 실제로 움직이는 대신 사이버 공간에서 움직이며 옷을 잔뜩 사서 옷장에 넣어두는 대신 사이버공간에서 매일 매일 새옷으로 갈아입는 것이다.
유명한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미래의 인간이 실제로는 배터리로 살면서 가상공간에서 환상에 빠져서 산다. 우리는 대부분 이것을 끔찍한 것으로 여기지만 약간의 변화만 가하면 이것은 실제로 인간들이 열열히 좋아할 미래의 삶일 수 있다. 우선 우리에게는 언제나 자유가 주어질 것이다. 우리는 기꺼이 기계에서 우리 몸을 떼어내서 실제 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그걸 우리가 좋아할까?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절반 이상이 스마트폰으로 그렇게 하고 있을 텐데 여러분도 언제든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다른 일을 할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스마트폰 안의 세상을 더 재미있어 하지 않는가?
사실 요즘의 젊은 세대를 보면 큰 집이 별로 필요없어 보인다. 그저 와이파이가 있고 배터리 충전이 가능하면 스마트폰으로 하루 종일 시간을 써도 그다지 지루한 것이 없다. 피씨방에 앉아서 하루 종일 시간을 쓰고 거기서 음식도 시켜먹고 살면 그것이야 말로 행복한 시간이라고 여겨진다. 스마트해지기만 하면 원룸에 살아도 행복한데 저축을 하고 융자를 해서 더 큰 집을 살 필요가 있을까? 아마도 조선시대 사람에게는 그것이 매우 끔찍하고 기괴한 삶일테지만 말이다.
문제는 운동부족이다. 하지만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온갖 방법이 더 발달할 것이다. 말하자면 원룸처럼 작은 방이 있고 운동을 할 수 있는 공동운동시설이 있어서 하루에 한번정도만 그곳에 다녀오면 건강이 유지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원한다면 멋진 몸매도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므로 사람들중에는 지금은 아주 드믄 체형을 가진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꼭 사이버세상에만 박혀사는 것은 아니다. 도시의 사람들도 농촌과 어촌을 찬양하면서 강이며 바다며 산을 본다고 휴일이면 난리를 피우지 않는가. 미래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사이버 세상에서 보낼테지만 그 안에서 투덜거리면서 '아 현실세계로 나가고 싶다, 이젠 이 사이버 세상이 지겨워!'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도시보다 시골이 좋다며 여행을 떠나는 도시인은 많지만 지겹다고 하면서도 도시는 사람으로 붐빈다. 마찬가지로 현실공간을 찬양하면서도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사이버공간에 더 많이 머물 것이다. 사실 도시의 매연이나 소음처럼 사이버 세상의 단점들도 있겠지만 그것을 감안하면 진짜 흥미롭고 새로운 세상의 유행이 있는 곳은, 세상을 움직일 정보가 움직이는 곳은 사이버공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물론 일자리도 성공의 기회도 거기에 있고 말이다.
결국 현실에서 잠깐 사이버세상으로 가는 것이라기 보다는 사이버 공간이 현실세계를 식민지화할 것이다. 현실공간을 위해 사이버공간이 존재한다기 보다는 사이버공간을 위해 현실공간이 존재하고, 사이버공간의 승자가 현실공간에서도 승자가 될 것이다. 도시 사람들도 먹고 살자면 농어촌이 필요하듯이 사이버공간도 유지되자면 현실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단 현실과 사이버세상간의 역전이 도래하면 현실공간은 지금의 시골처럼 느껴지고 주로 사이버세상에 의해 좌지우지될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이런 세상이 오고 이런 세상이 오는 징조는 무엇일까? 도시가 농촌을 압도하는 것을 보여주는 징조는 농지보다 도시의 부동산을 더 선호하는 것이고 농촌보다 도시에 일자리가 더 많아지는 것이다. 즉 농지를 소유하는 것이 부의 원천을 가지는 것이라는 인식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를 미뤄보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언제 가상세계의 자산과 고용이 현실세계의 자산과 고용을 압도하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 일은 생각보다 멀지 않을 수 있다. 사실 기계화가 농촌에서의 일자리를 줄였듯이 인공지능의 발달이 오프라인의 일자리를 대량으로 줄일 것으로 사람들은 생각한다. 3년이나 5년뒤는 아니라도 30년 뒤라면 교통과 물류가 거의 다 자동으로 움직일 것이다. 대부분의 요리도 로봇이 할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오프라인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일자리는 상당부분 사라진다. 사실 대한민국은 이미 5명중 한명이 유튜브 방송을 한다고 한다. 인구당 유튜버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 아직 그것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작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소득올리는 일을 찾을 것이다.
그 핵심에는 정보처리와 컨텐츠 생산이 있다. 농촌에 비하면 도시가 환상의 세계처럼 보일 수 있듯이 온라인의 세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컨텐츠가 넘쳐나는 곳이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더 그렇게 될 수록 인재를 찾아내고 그 인재를 서포트 하는 일에 수 많은 사람들이 종사하게 될 것이다. 마치 한명의 슈퍼스타를 키워내기 위해서 작곡, 안무, 기념품 생산. 무대꾸미기등 수없는 사람들이 뒤에서 움직이는 것과 같다. 오징어 게임같은 컨텐츠 하나는 세계적 유행을 만들고 그에 딸린 수없이 많은 비지니스를 만들 수 있다. 여행도 있고, 기념품도 있으며, 출판도 있고, 게임도 있을 것이다. 비트코인같은 가상화폐는 그걸 국가화폐로 선언한 나라도 등장할 만큼 세계를 흔들었다. BTS가 유엔에 가서 청년들에게 말을 하는 것이 국가정산이 그렇게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지금의 세계를 지배하는 사람은 도시를 지배하는 사람들이라면 미래의 지배자는 바로 이 사이버 공간의 지배자일 것이다. 그들의 힘은 어쩌면 국가를 금방 초월해서 세계를 한순간에 통합해 버릴 수 있다. 현실세계에서 항공모함이니 6세대 전투기니 드론이니 하는 것을 개발하는 일은 미래에도 중요할 것이다. 지금도 1차산업이 안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국 돈과 정보가 흐르는 양의 차이에 의해 승부는 결판날 것이다.
지금 미국의 회사들 중에 주가총액이 가장 높은 세개의 기업은 애플과 마이크로 소프트 그리고 구글의 알파벳이다. 애플은 물론 하드웨어 기업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모두 OS를 가지고 있거나 유튜브같은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 애플은 iOS를 가지고 마이크로 소프트는 원도우를 가지고 구글은 유튜브와 안드로이드를 가지고 있다. 4위와 5위도 아마존과 테슬라로 둘 다 소프트웨어 플랫폼 능력이 돋보이는 회사들이다. 즉 인터넷 연결과 소프트웨어가 없다면 경쟁력이 크지 않다. 이렇게 보면 이미 세상의 변화는 상당부분 진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시화가 진행되던 시절은 농기계가 발달하고 후진국에서 싼 인력이 들어오는 시절이기도 했다. 농촌의 삶에 익숙한 사람들은 사람의 수십배로 일을 하는 농기계를 보고 이것이 미래이며 농기계를 만드는 회사가 미래를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모두가 농기계의 덕을 보거나 후진국에서 온 싼 인력의 덕을 보면서 한가한 농부가 되는 것이 미래라고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이 상상은 틀리지는 않지만 맞지도 않다. 농기계를 만드는 회사들은 돈을 벌었지만 세계최고의 산업은 농기계산업이 아니다. 모두가 한가한 농부가 되는게 미래도 아니었다. 그들은 도시로 가서 도시인이 되었다.
로봇비서가 집안을 하고 자율주행 자동차가 인간과 물류를 엄청난 속력으로 움직이는 미래를 지배하는 것은 정말 로봇회사와 자율주행자동차 회사일까? 우리 모두가 한가한 도시인이 되는 것이 미래일까? 그건 다만 시작일 것이다. 더 정보집약적이 될 미래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속력으로 자원이 생산되고 배포되고 사용될 것이다. 테슬라는 겨우 몇십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일도 힘들었지만 그런 일은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는 미래다. 지금보다 세상이 몇배에서 몇십배 빨리 변하는 미래니까 테슬라같은 회사가 15년걸려서 한 일이 1년정도에 일어나는 미래라고 할 수 있다. 그 일이 일어나는 곳은 물론 사이버 공간이고 그 이전에 미래다. 아마도 지금의 우리로서는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을 미래 말이다.
'주제별 글모음 > 우리시대의 혁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너지로 보는 미래 (0) | 2022.10.13 |
---|---|
개혁, 그렇게 해도 될까? (0) | 2021.08.17 |
왜 낡은 시대는 끝나지 않는가. (0) | 2017.09.06 |
왜 세상은 이렇게 부조리할까? (0) | 2017.06.15 |
자유로운 사회와 그 적들 (0) | 2017.05.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