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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나를 지키기, 내 생활을 지키기

by 격암(강국진) 2022. 2. 26.

22.2.26

다산의 형님은 자신의 집을 나를 지키는 집이라는 뜻의 수오재라고 지었다. 이에 대해 정약용은 수오재기를 썼는데 나는 그것을 읽은 후 내 블로그의 이름을 나를 지키는 공간이라고 지은 적이 있다. 이제와 돌아보면 나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은 실로 내가 평생에 한 일중에 가장 공을 들인 일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그 이유는 어떤 고상한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나를 잃을 것이 나는 어릴 적부터 두려웠기때문이다. 내 아내는 내가 고집이 세고 자기를 잘 지키는 강한 사람이라고 말할 때도 있지만 나는 사실 기가 세고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은 못된다. 그렇게 태어나지 못했고 그런 사람이 되지도 못했다. 나는 다만 두려울 뿐이다.

 

뭐가 두려운가? 살아보니 나를 뒤흔드는 사람이 세상에 너무 많았다. 그들이 모두 나쁜 사람인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 그들은 대부분 그다지 많은 것을 알고 있지도 않은 사람이었고 그렇게 깊은 생각을 한 사람도 아니었다. 나에 대해 그리 깊은 고민도 없이 아무 책임감도 없이 그냥 나를 흔든다. 사실 내가 같이 일해본 몇명의 지도교수를 나는 꽤 높이 평가한다. 하임 솜폴린스키나 준이치 아마리 같은 분들은 훌룡한 학자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인간으로 높이 평가할 만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나는 느낀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결코 다른 사람을 쉽게 뒤흔들지 않는다. 그런 경우가 있어도 얼마지나지 않아 오히려 사과한다.

 

나를 쉽게 뒤흔드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믿는 것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걸 나에게 강요하는 사람들이다. 그것도 무슨 철학이나 학문에 대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결혼을 해야 할까 하지 말아야 할까? 어떤 사람과 해야할까? 집을 돈을 빌려서라도 사야할까 하지 말아야 할까? 직업이나 학교를 선택할 때 어떤 곳을 선택해야 할까? 여러가지의 것들에 대해서 그들은 야금 야금 나를 침입해 온다. 내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전주에 살게 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분명히 하나의 이유는 만약 내가 수도권이나 부산같은 곳에 살았더라면 가까운 곳에 사는 친척이나 그 동네에 사는 이웃들에 의해 너무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아이들 학원은 어느 정도를 보내야 하고, 외식은 어떤 것을 해야 하고, 차는 어떤 것을 타야 하고, 그런 식으로 조금씩 물이 들다보면 어느새 우리의 삶은 말도 안되게 변하게 된다. 워낙 한국 사람들은 말이 많고 비교하는 일이 많다. 어떤 때는 보면 기어코 자기 식대로 주변 사람들을 뒤흔들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어 보인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그런 뒤흔듬에 대부분 그다지 깊은 고민이나 지식은 없다. 그래서 나는 두렵다. 악의에 차서 나를 욕하는 사람이상으로 웃는 얼굴로 내 삶을 침범하는 사람들이 두렵다. 그들은 야금 야금 내 삶을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은 신경쓰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멋진 태도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남이 나를 망치는 것을 두려워 하는 사람이다.

 

그럼 도대체 나를 지킨다는 것은 뭘 말하는 것인가? 생각해 보면 그건 대부분 삶에 대해 고민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나도 돈이 싫지 않고 남이 나를 알아주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나도 투자도 하고 맛있는거 먹으러 다니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뭔가 단순히 돈이나 집이나 어떤 유명세가 인생의 전부라는 생각에 빠져드는 것이 두렵다.어떤 틀속에 완전히 빠지고 코가 꿰이는 것이 두렵다. 삶과 이 세상은 계속 탐색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나는 적어도 아직은 젊게 살고 싶고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순간 나는 실질적으로는 죽은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에게 젊다는 것은 아직 삶이란 이런거라고 고정 짓지 않고 보다 가슴두근거리고 대단한 것이 저기 어디에는 있을거라고 믿는 것을 말한다. 젊다는 것은 세상에 보지 않은 것이 더 많다는 것이고 그래서 내년에는 내후년에는 내가 지금은 그게 아직 뭔지 모르는 뭔가를 아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글쓰기와 사색의 시간이다. 책을 읽거나 어떤 컨텐츠를 보거나 하는 시간도 소중하고 그 이외의 시간도 좋아하지만 이미 배운 것을 살피고 정리하는 시간이 내게는 가장 중요하다. 내게 있어서 그 시간은 지난 수십년간 해온 집짓기를 조금씩 더 하는 시간이다. 그러니까 나는 물리학을 배우고 뇌과학을 배우고 동서고금의 고전을 읽고 또 스스로 글쓰기를 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을 배우고 만들어 왔는데 이제 그걸 조금씩 더 살펴서 어딘가에 돌파구를 만들고 싶다. 다시 말해 이제까지의 나를 잊지 말고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돌파구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보다는 어렵다. 온갖일이 나를 빼앗아 간다. 사람이 살자면 여러가지 일을 해야 한다. 청소도 하고 밥도 먹어야 한다. 가족의 일원으로서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도 있고 그들이 걱정이 되어서 하지 않을 수 없는 일도 많다. 부모니까 자식걱정도 해야 하고 아내걱정 부모걱정도 해야 한다. 물론 돈걱정도 필요하고 기분전환도 필요하고 몸을 단련하는 일도 해야 한다. 나는 아직 노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20대때와는 체력이 다르다. 이 문제도 나름 심각하다. 이런 저런 일로 24시간은 금방 사라진다.

 

이런 일상이 나를 끝없이 침범하고 나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잊게 한다. 그래서 나를 로보트로 만들고 진정한 노인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이제 가슴 두근 거리는 일도 없게 되고 미래에 희망도 없어지게 되며 나 자신에 대한 자긍심도 사라지게 된다. 나는 아직 실제로 그렇게까지 되어 본 적은 없지만 그렇게 되어 버린 것같은 사람은 사방에 천지다.

 

요즘 한국에서는 좀비물이 인기다. 그래서 인지 나는 그들이 좀비처럼 보일때가 많다. 좀비들은 사방에 있으며 비틀거리면서 다른 사람들을 물어서 또다른 좀비로 만들려고 한다. 자식 입시가 걱정 안되는 사람이 있겠나 만은 자식입시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사람이라던가 골프나 고급가방같은 것에 몰두하는 사람, 남의 험담에 몰두하는 사람, 이도저도 아니면 마치 일하는 기계처럼 일을 만들어 하루종일 스스로 생각이란 걸 할 필요가 없게 만들어 바쁘게 사는 사람, 그러다가 몸이 안좋아져서 그저 고통에 대한 불안과 불만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좀비처럼 걷고 표정이 없다. 그리고 좀비처럼 살아있는 사람을 보면 달려들어 감염시키려고 한다.

 

꼭 글쓰기만이 답은 아니겠지만 일찌기 정약용이 그렇게 했듯이 나도 글쓰기에서 답을 찾았다. 그런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한주가 지나고 한달이 지나도 일기 한줄 쓰지 않고 사는 사람이 정말 짐승보다 나은게 있나 싶다. 쓰지도 않고 쓴 걸 다시 읽어보지도 않으니 자기가 자기를 모른다. 날마다 일기를 쓰면서 살아도 세월이 이렇게 빠른가 싶은 것이 삶인데 돌아보지도 않으면서 살면 세월은 또 얼마나 빠를 것인가. 글한줄 쓰지 않고 머릿속 생각만으로 내가 원하는게 뭔지, 내 고통의 원인이 뭔지를 정리해 낼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아주 드물다. 내가 타인을 모르니 그저 글을 읽는 정도로만도 그게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의심스럽다. 아마 그런 사람들은 타인의 생각을 그냥 외우고 그걸 자기 생각으로 착각하는 것일 것이다. 불구덩이속에서 뛰쳐나오지는 않고 그 안에서 여기가 뜨겁다 저기가 뜨겁다며 몸만 뒤척이고 있는 것은 짐승이나 할일이다. 돌아보지 않는 삶, 글쓰기가 없는 삶이란 이럴 수 밖에 없다.

 

오늘은 우연히 심야에 일어났는데 유달리 마음이 맑았다. 그런 김에 다시한번 나를 지키는 것에 대해 몇자 쓴다. 아무쪼록 좀비로 가득 찬 세상에서 내가 계속 생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좀비로 변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에게 살아남으라고 응원을 보내고 싶다. 우리 계속 살아남자. 할 수 있을때 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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