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내가 규칙적인 생활에 반대하는 이유

by 격암(강국진) 2022. 4. 14.

22.4.14

나는 일반론적으로 말해 규칙적인 생활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은 꼭 내 생활이 극도로 불규칙하다던가 내가 모든 생활의 규칙에 반대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규칙을 필요악으로 생각하며 일반론적으로 말해 내 생활을 더 규칙적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의미로 내 생활이 더 규칙적이 되는 만큼 내가 죽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누구나 살면서 어떤 규칙을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어떤 규칙을 지킬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규칙을 도입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차이가 매우 크다. 어떤 사람들은 규칙을 도입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그걸 지키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쉽게 어떤 것을 규칙으로 만들자고 하지만 실은 그 규칙을 잘 지키려고 하지도 않는다. 또한 어떤 사람은 끝없이 많은 것을 다 규칙으로 하려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규칙은 작을 수록 좋다고 말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나는 생활의 규칙은 작을 수록 좋고 일단 규칙으로 정하면 그걸 지키려고 진지하게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규칙은 필요악이다. 그걸 규칙으로 삼을만큼 중요하다면 그걸 지켜야 한다. 나는 왜 이런 태도를 취할까? 거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을 규칙으로 만든다는 것은 죄책감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매일 식사후에는 바로 설거지를 하겠다고 결심을 한다는 것은 내가 그걸 하지 않으면 내가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나와의 약속 혹은 아내와의 약속을 어기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온갖 약속을 한 후에 그 약속들을 지키지 못해서 죄책감을 느끼고 살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나와의 약속이든 누구와의 약속이든 함부로 하고 싶지 않다. 

 

게다가 일상에 대한 약속이란 대개 단 한번만 하고 마는 것이 아니다. 대개 매일 매일 하기로 하는 약속이며 거의 한정없는 기간동안 그렇게 하기로 하는 약속이다. 나는 이런 약속에 대해 민감한 편이며 이것은 나의 소비성향과도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나는 20만원짜리 물건을 사도 그것이 일회성이라면 그다지 크게 신경쓰는 타입이 아니다. 한번 사면 몇년을 쓰는 물건이라면 20만원이건 백만원이건 물론 생각해 보고 사지만 비교적 담대하게 결정한다. 반면에 그것이 비록 만원이나 이만원이라고 하더라도 매달 나가는 지출이라면 나는 되도록 피하는 편이다. 뭔가를 가입했는데 그걸 몇년에 걸쳐서 하는 일이며 나중에 해약하는 것도 쉽지 않다면 나는 그걸 하고 싶지 않다. 나는 훗날 그 지출에 대해 망각하게 될 가능성이 크고 그렇지 않다면 매달 매달 나는 내 통장에서 돈이 왜 나가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나는 그런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의 소비가 싫은 것이다. 이걸 약속으로 환원하면  나는 일회성이라면 이해가 안되고 꽤 어려운 것도 비교적 약속을 쉽게 한다는 뜻이다. 반면에 뭔가를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관여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라면 나는 잘 약속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자유로운 쪽이 좋기 때문이며 가능성을 열어두는 쪽이 좋기 때문이다.

 

이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나는 하루 하루를 자유롭게 살고 싶다. 나는 매일 매일이 하나의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행계획을 세울 때면 대충의 중요한 얼개만 세운다. 그리고는 여행을 계획없이 떠나서 그때 그때의 기분에 따라 그 여행을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미리 어디에 갈지, 뭘 먹을지, 어디서 머물지등 여행의 모든 면들을 미리 다 계획하고 떠나면 바쁘기만 하고 즐거움이 없어진다. 언제나 여행에서 가장 힘들고 즐거운 부분은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나오는 법이다. 우연히 걸었던 길이 너무 좋았다던가 우연히 찾아들어간 집이 너무 맛있는 집이었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진정으로 100% 아무 정보도 없이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재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너무 위험한 일이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의 조사와 어느 정도의 계획은 필요하다. 아무 이미지도 정보도 없이는 즉흥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안전판이 마련되었다면 나는 그냥 마음내키는 대로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드라이브를 나갔는데 길이 좋다면 그냥 달리는 것이다. 오늘은 이정도 나가볼 예정이었다던가 하는 식의 제약에 얽히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왜 스스로를 그런 제약들에 가둬서 뻔히 보이는 가능성을 치워버려야 한다는 말인가? 다음번에 다시 계획세워서 여기에 오자는 말은 그럴 듯하지만 첫째로 대개 그런 계획은 일상에 묻혀서 사라지기 쉽고 둘째로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그때는 느낌이 다를 가능성이 크다. 똑같은 가게라도 어떤 문맥에서 방문하는가에 따라 아주 즐거운 경험을 줄 수도 있고 일부러 시간을 낼만큼 가볼만 하지는 않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우리가 하루를 사는 것을 여행으로 본다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하루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뭔가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집중하고 그 이외의 것은 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일상은 사소한 그리고 중요한 여러가지 일들로 대개 미리 채워져 있다. 사실 사소해 보이는 일들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잘 씻는 일이라던가 운동을 하는 일이라던가 설거지를 제때에 하는 일, 옷을 말쑥하게 입는 일 그리고 밥을 제대로 챙겨먹는 일, 양가 어른들의 생일을 챙기는 일 같은 것도 중요한 것들이다. 우리가 살자면 숨을 쉬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일들을 챙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작은 일들이 쌓여서 우리의 삶을 망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일상에 너무 빠져들면 우리는 살기 위해서 숨을 쉬는게 아니라 숨을 쉬기 위해서 살게 된다. 즐거워서 여행을 가는게 아니라 여행을 가는 것이 의무가 된다. 다시 말해 서울에 가서 보고 싶은 남산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남산을 보는 일을 하기 위해서 서울에 가는 것이 의무가 되어 서울 여행이 하나도 즐겁지 않은 일이 된다. 부부간의 생활도 가족의 생활도 우리가 어떤 규칙을 정하게 되면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규칙은 의무를 만든다. 그래서 가족이나 부부가 서로를 위한 마음으로 하는 일이 금방 규칙이 되어 버린다. 용돈을 고정시키면 그것은 이제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돈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에게 빚진 돈처럼 된다. 가사를 규칙으로 고정시켜도 내가 가족이나 배우자를 위해 해주는 일이 아니라 내가 가족에게 빚진 일이 된다. 결국 그런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빚진 사람이 되고 서로의 호의를 낭비하고 만다. 

 

불행한 것은 적어도 한국 사람의 대부분은 이런 생활태도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냥 살지 않는다. 우리는 의무를 위해 산다. 우리는 오랜 기간동안 삶의 목표가 저절로 주어지는 입시 환경속에서 그것만을 위해 사는데 익숙하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초등학생은 중학생이 되기 위해 살고 고등학생은 대학생이 되기 위해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긴 세월동안 우리의 목표는 그저 공부를 더 잘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생활을 가능하면 모두 공부하는 시간으로 채워넣는 일에 익숙하다. 물론 모두가 하루 종일 공부만 하는 학생으로 사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으로서 만약 어떤 빈시간이 생긴다면 그 시간을 무엇을 하는데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뻔하다. 가능하면 공부하는데 써야 한다. 그게 생활의 규칙이다. 우리는 다만 그 규칙을 어기면서 그 시간을 노는데 쓸 뿐이다. 대개는 공부 이외의 일을 하는 것이 공부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없다. 

 

이렇게 자유시간이 애초에 얼마 없고 그나마 얼마간 있다는 그 자유시간도 그저 단순히 가능하면 공부를 한다는 원칙으로 살아온 사람들에게, 다시 말해 자신의 하루를 의무로 하는 일로 채우는 사람에게는 한가지 훈련이 부족하다. 그것은 시간이 있을 때 그것을 정말 뭘 위해 써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일이다. 우리는 숨쉬기 위해 사는게 아니라 살기 위해 숨을 쉰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공부를 하거나 밥을 먹거나 운동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뭔가를 하기 위해 그런 다른 일들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뭔가를 찾지도 생각해 보지도 않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오히려 자유시간을 싫어하게 된다. 자유시간을 정말로 자유롭게 쓰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라고 여기게 되어 우리는 자꾸 생활의 규칙을 도입하고 어떤 대의명분을 가진 일로 즉 의무로 그것을 채우려고 한다. 나는 삶의 목표가 운동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머릿속에 가치있고 비교적 재미있는 일이 운동밖에 없다면 우리는 모든 자유시간을 운동으로 채우려고 하게 된다. 그것이 설거지나 청소나 몸을 씻는 일이라면 우리는 하루 종일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몸을 씻으며 살려고 하게 된다. 그것이 돈을 버는 일이라면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그것이 의무를 위해 우리의 자유시간을 가치있게 쓰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여러가지 생활의 규칙을 도입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대부분이 아니면 전부다 도구일 뿐이다. 이것이 혼동되면 어떤 의미로 우리는 그 순간 죽은 상태에 있다고 할 수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존재하는 로보트가 아니다. 설혹 그것이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그렇다. 우리는 때로 사랑으로 기꺼이 의무를 짊어진다. 그러나 의무를 규칙으로 삼는 순간 이러한 사랑의 행위는 그 가치가 거의 없어진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 차이를 모르면 우리의 삶은 순식간에 증발한다. 그리고 이미 아무도 원하지 않는 빵을 굽는 빵굽는 기계로 변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주변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본래의 목적은 까마득하게 오래전에 망각한 의무와 규칙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주제별 글모음 > 생활에 대하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무지와 악  (0) 2022.04.25
사랑과 삶의 방식  (0) 2022.04.18
돈이 문제인가?  (0) 2022.03.30
나를 지키기, 내 생활을 지키기  (0) 2022.02.26
무시당하기와 무시하기  (0) 2022.02.1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