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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돈이 문제인가?

by 격암(강국진) 2022. 3. 30.

2022.3.30

내 글은 언제나 그렇지만 오늘은 생각을 정리할 겸 전부터 하던 한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 질문은 만약 내가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나는 뭘 하고 살고 싶은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원하는 삶이 뭔지를,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한가지 방법이 된다. 이답은 물론 20대와 40대에서 그리고 60대에서 다 다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따금 이런 질문을 다시 던진다. 

 

일단 나는 글쓰기는 계속하고 싶다. 죽을 때까지 매일 매일 글쓰기를 하고 싶다. 글쓰기가 너무 좋아서라기 보다는 글을 쓰고 생각을 하는 일을 멈추는 순간 내가 어떤 다른 일을 하든 나에게 문제가 생길 것같기 때문이다. 나는 차츰 나 자신에게서 멀어질 것같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날이 오겠지만 전혀 글을 쓸 수 없는 날이 오면 나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나는 더이상 내가 아니라는 것을. 그때는 내가 평생 쓴 글들을 다시 읽으면서 나를 기억하며 살 수 밖에 없다. 

 

그걸 위해서 나는 돈으로부터 자유롭다면 커다란 서재를 가지고 싶다. 전자책도 괜찮지만 그안에 온갖 종이책들을 수집해 놓고 싶다. 어린 시절 나의 꿈은 서점주인이 되어 공짜로 책을 보는 것이었는데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그런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살고 싶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책들은 물론 내가 읽지 않은 수많은 좋은 책들을 골라다가 진열해 놓고 손가는대로 도전하면서 살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어느날 내게 좋은 생각들이 떠오른다면 그걸로 책을 내고도 싶다. 

 

이것을 제외한다면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집을 짓는 것이다. 너무나 많은 돈이 들어갈것이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지만 나는 다양한 주거를 실험해 보고 싶다. ㄷ자 한옥에서 살거나 그런 구조에서 영감을 받은 집에서 살아보고 싶고 전기차와 간단한 주거시설을 결합하는 최소의 주거를 생각하고 지어보고 싶다. 멋없는 큐브구조의 원룸빌딩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임대주택을 상상해 보고 지어보고 싶다.

 

한국은 지난 10년간 많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주거문화가 아쉬운게 많다. 워낙 비싼게 집이니까 집에대해서 돈을 잊어보도록 하자는 말은 너무 힘든 말이지만 그럴 수 있다고 할 때 보다 각자의 개성과 고민이 많이 들어간 집들이 한국에 많았으면 좋겠다. 그게 바로 흥미로운 도시이고 재미있는 마을이니까 그렇다. 사람들이 모두 통일된 옷을 입고 사는 나라보다는 다양한 옷을 입고 사는 나라가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나라이듯이 말이다. 

 

집을 제외하면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것은 전기차다. 어떤 의미에서는 집보다 전기차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데 그 이유는 전기차는 집보다는 싸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본래 신기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아이패드나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 네비가 처음 나왔을 때도 그런 기계들에 관심이 많았다. 내가 돈에서 부터 자유로워진다면 나는 아마도 여러가지 전자제품들을 마구 사들여서 내 집에 전자제품 체험관이라고 할만한 곳을 만들 것이다. 멋진 컴퓨터는 물론 오디오며 가전이며 여러가지 새로운 기계들을 써보고 싶어할 것이 틀림없다.

 

발명은 나름의 문화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예를 들어 라디오는 라디오를 어딘가에서 듣는 다는 것을 전제하고,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은 노이즈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것을 전제한다. 나로서는 여러가지 기계들은 그 것의 발명자로부터 듣는 생활에 대한 제안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살아도 볼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 배터리가 오래가는 노트북이나 휴대가 간편하지만 용도가 무궁무진한 스마트폰은 당신이 원하시는 곳 어디든지 떠날 수 있다고 나에게 말해주는 것같다. 그래서 나는 이런 저런 기계들을 둘러 보는 것이 좋다.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상상력을 자극하는 일이다. 

 

그러나 물건들 중에서도 지금 내 관심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은 전기차인데 그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 세상을 바꾸고 있는 것은 전기차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10년전만 해도 전자제품 판매장은 나에게 놀이터 같은 곳이었지만 최근에는 흥미가 많이 줄었다. 단순히 구경을 위해 그런 곳에 가는 일도 줄어들었고 실제로 때로 방문하게 될 때에도 딱히 굉장히 새로운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전기차는 다르다. 전기차는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이다. 실제로 테슬라를 타고 다니다 보면 지금의 전기차는 마치 아직 앱시장이 열리지 않은 스마트폰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여기서 한걸음만 더 가면 갑자기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서비스를 쏟아낼 것같은 느낌인 것이다. 그것은 유선전화기나 2G폰이 스마트폰과는 전혀 다른 물건이듯 우리가 아는 자동차를 전혀 용도가 다른 물건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걸 위해서 나는 전기차를 사고 그걸 개조해보고 테스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돈에서 자유롭다면 나는 이런 저런 최고의 전기차들을 경험해 보고 싶다. 그 결과로 투자도 할 수 있겠지만 이미 돈에서 자유롭다면 투자는 필요없을 것이니 이런 생각은 무의미하겠다. 

 

지금으로 떠오르는 마지막은 그리고 마지막이지만 아주 사소하지는 않은 내 욕망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거나 사먹는 것이다. 내가 돈에서 자유롭다면 나는 아마도 좀 더 많은 미식을 즐기려고 할 것이다. 나는 본래 음악과 음식에 대해 열정이 있었다. 요리에는 자질이 없지만 그래도 넓고 깨끗하며 편리한 주방을 가지고 싶은 욕망은 있다. 남자답지 않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예쁜 식기나 컵따위도 좋아한다. 덕분에 우리집을 방문한 사람들은 종종 이 집에는 컵이 왜 이렇게 많냐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직접 내린 원두커피나 스스로 만든 이런 저런 음료들을 다양한 컵에 담아 먹는 것이 내가 즐기는 호사중의 하나다. 차가운 보리차에 불과한 것도 멋진 유리컵에 마시면 꽤 근사한 음료가 된다. 그러니 돈에서부터 자유롭다면 나는 큰 주방을 만들고 그걸 멋진 그릇들로 채우려고 할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원하는 것들을 만들어 먹고 사람들과 식사를 할 것이다. 

 

내가 돈으로부터 자유롭다면 하고 싶은 것들이 이런거라고 할 때 나는 내 자신을 다시 둘러 본다. 나는 거대한 서재와 부엌을 갖춘 대저택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여러대의 전기차를 놓아둘 주차장도 없다. 값비싼 전자제품으로 채워놓은 방도 없으며 이런 저런 집들을 지어볼 수도 없다. 하지만 내가 묘사한 꿈들은 이미 어느 정도는 현실이라는 것을 나는 깨닫는다. 

 

나는 글쓰기와 독서를 매일 하려고 하면서 살고 있다. 2층의 작은 내 서재는 누가봐도 대단한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책으로 채워져 있다. 게다가 나는 도서관에 갈 수도 있고 때로 책을 들고 카페에 갈 수도 있다. 꿈같은 서재는 아니라도 이것도 나름 괜찮다. 사실 내가 전주의 꽃심 도서관같은 곳을 개인 서재로 가지고 있다면 그건 굉장한 사치겠지만 남들과 같이 도서관을 쓰는 것도 괜찮다.

 

나는 집을 지어본다던가 하는 일을 할 돈도 없고 돈이 있다고 해도 거기에 들어가는 시간과 고생을 무릅쓸 용기도 없다. 그런 고생과 시간도 결국 더 많은 돈이 있으면 줄어들겠지만 그렇게까지 할 돈은 더 없다. 그래도 나는 전주로 이사를 오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이 집에 들어왔다. 대개 결혼하고 20년정도가 지나면 집안 세간이 엄청 많아지는게 보통이다. 쓰던 가전제품이며 가구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쌓여서 그걸 처분하기 전에는 새로운 생활을 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나는 외국에서 귀국했기 때문에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처분했고 따라서 모든 것을 다 살 필요가 있었다. 우리가 사는 소위 주인세대라고 불리는 복층구조의 이 집은 이층집을 원룸빌딩 건물위로 올린 것같은 구조로 되어 있는데 아쉬운대로 이층집에 살고 싶어하는 내 욕망을 충족시켜주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몇년전에 이층집으로 이사를 하고 집안의 인테리어를 모두 바꾸는 일을 해본 것이다. 부자들의 사치에 비하면 매우 사소한 것이나 소시민인 나로서는 드문 사치였고 재미있었다. 새 광파오븐이며 정수기가 달린 냉장고며 새 침대에 새 소파 새 테이블까지 온갖 것을 고르고 배치하느라 우리는 한동안 바빴다. 재미는 있었지만 사실 두번 세번할 짓은 못된다. 할일이 참 많다. 

 

나는 결국 전기차를 사기도 했다. 내게는 이 테슬라 모델y가 세상의 어느 차보다 더 좋게 느껴지는 드림카다. 람보르기니 부럽지 않고 포르쉐 부럽지 않다. 나는 마치 사람들이 아직 스마트폰이 없는데 나만 스마트폰을 쓴다는 느낌을 가지며 이 차를 즐기고 있다. 이 차는 본래 우리집에는 무리가 되는 사치였는데 작년에는 여러 우연이 겹쳐서 살 수 있었다. 첫째로 작년에는 투자가 잘되어 돈을 좀 벌었고 둘째로 어차피 차를 바꿀 때가 되었었으며 세째로 지금보다 차값이 거의 2천만이나 쌌다. 내가 살 때보다 자동차 값만 천육백오십만원이 올랐는데 그때문에 전기차 보조금도 받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실질 구매 비용은 2천만원 이상 오른 셈이니 나는 아주 운이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전주에 산다. 전주는 도서관 시설이 좋고 맛집이 많다. 사실 전주 가게들이 모두 맛집은 아니며 요즘은 전국 어디엘 가나 맛집들이 많다. 게다가 전주에 처음왔을 때에는 어딜가나 너무 맛있는게 많아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지만 몇년지나고 나니 이젠 좀 익숙해진 것같기도 하다. 그래도 전주는 분명 음식이 맛있는 미식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곳에 사는 것은 나의 음식에 대한 욕망에 적합한 것이다. 

 

나는 부자가 아니며 돈에서 전혀 자유롭지 않다. 나는 돈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라는 사람은 아니다. 어디서 하늘에서 돈벼락이라도 쳐서 정말 돈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그래서 여러가지를 마음껏 더해보고 싶다. 하지만 지금도 나쁘지는 않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도 아쉬운대로 해보고 싶은 것들을 조금씩 해보며 살고 있다. 생각해 보면 돈이 없으면 할 수 있는게 없기는 하지만 생각만큼 돈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상상력과 선택도 돈만큼이나 때로는 돈이상으로 중요하다.

 

돈에서부터 자유롭다면 나는 이러저러하게 살 것이다라고 생각하는데 지금의 삶이 그것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면 그건 둘 중의 하나 혹은 둘 다를 의미한다. 하나는 자신의 욕망을 착각하는 것이다. 나는 음악따위는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하고 있지만 하루에 몇시간씩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면 당신의 열정은 음악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 스스로를 바깥에서 관찰해서 자기를 발견할 필요가 있다. 하루의 대부분을 나무 위에서 지내는 원숭이는 나무위가 좋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를 보면 우리가 진짜로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 사회에서 주입한 의무감때문에 나는 이런게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다. 진짜 열정은 다른데 있는 데 말이다. 스스로를 고양이라고 착각하는 거북이는 괴롭게 살 뿐이다. 그런 착각이 돈에서 자유로울 때 내가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과 실제의 선택을 다르게 한다. 

 

또하나는 단순히 당신은 인생을 잘못살고 있는 것이다. 돈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그걸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고? 돈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세상에서 정말 소수다. 그때를 기다리며 산다면 우리는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나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때 그때의 작은 선택과 작은 노력들 그리고 작은 상상력이 있으면 속시원하게 그렇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이상형과 비슷해 질 수는 있다. 물론 우리는 돈에 쪼들리는 소시민이므로 우리의 삶은 돈에서 자유로운 상상속의 그것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내놓고 말하기 챙피하게 다를 것이다. 예를 들어 집을 지어보겠다는 야망을 고작해야 인테리어 정도를 고민하는 정도로 달래야 한다면 그렇다. 하지만 그 상상속의 삶이 지금의 당신의 삶속에서 자취도 없다면 그리고 당신이 스스로의 욕망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 봤는데도 그렇다면 당신은 인생을 잘못살고 있다. 돈만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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