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한국의 문화 지체 현상

by 격암(강국진) 2022. 4. 7.

22.4.7

내가 틈틈이 하는 블로그 백업 일을 하다보면 한국의 변화를 느낄 때가 많다. 2010년이나 2009년에 적은 글들을 읽다보면 아 그때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이렇게 다르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물론 대표적인 변화는 한국이 그때보다 훨씬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2009년 한국의 1인당 GDP는 16450불이었다고 하는데 한국의 GDP는 2021년에 3만5천불 수준이 되었다고 하니 그때와 비교해도 한국의 일인당 소득은 두 배가 성장한 셈이다. 참고로 말하면 2009년의 일본 GDP는 39573불이었는데 2021년에 42298불이었으니까 상대적으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물론 좋아진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2009년의 출산률은 1.15였는데 당시에도 너무 낮았던 이 수치는 2021년에는 0.81이라는 엄청난 숫자가 되었다. 이같은 것은 단순히 수치로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 보면 결혼을 하지 않는다던가, 결혼을 해도 늦게 하는 사람들이 요즘 아주 많이 눈에 띈다. 나는 30에 결혼을 하고 바로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50쯤 되자 큰 아이가 대학에 들어갔지만 나보다 불과 한두살 어린 사람들 중에는 결혼은 30대 중반이나 후반에하고 그나마 아이도 늦게 낳아서 50이 되어도 아이가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는 경우가 많다. 내가 결혼할 무렵에는 여자가 30이 넘으면 노처녀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은 20대에 결혼하는 여자에게는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냐고 야단이다. 지난 일이십년간 이유가 뭐가 되든 결혼문화는 큰 변화를 겪은 것이 분명하다.

 

어느 시기이건 한국은 큰 변화를 겪었지만 김대중-노무현시기는 한국에서 부패가 사라지고 권위주의가 사라지던 시기였다. 그같은 변화는 보수 세력이 집권한 이명박 박근혜 기간 동안 어느 정도 역전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시대적 변화는 한방향으로 계속 된 것같다. 내가 본 한국의 20년 전은 훨씬 더 권위주의가 강해서 사람들을 돈이나 지위로 차별하는 일이 많았고 그러면서 일은 대충대충하고 그러면서도 생활은 그저 모두 일뿐이었다. 찻집은 많았지만 외식도 별로 없었다. 한마디로 전근대적이고 후진국 다운 나라였달까.

 

요즘은 한류열풍이 불고 있고 한식도 세계적으로 인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에 참 좋은 식당이 많아졌다. 이렇게 된데에는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지만 백종원같은 사람의 노력도 큰 기여를 했다. 사실 20년전만 해도 한국의 외식산업은 맛이든 서비스든 형편없었다. 식사의 종류도 훨씬 제한적이었는데다가 식당들이 노력이 참 없었다. 백종원이 상징하는 흐름은 외식산업에 있어서 기본과 상식은 지키자는 것이었다. 기본과 상식이란 예를 들어 위생이 그렇고 맛이 그렇고 가격이 그렇다. 과거에는 더러운 가게에서 종류만 많이 만들어서 팔뿐만 아니라 원가를 어떻게 낮출까를 생각하지 않고 음식을 파니까 엉망진창인 가게들이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실 돈도 없었지만 나가서 사먹을 동기도 별로 없었다. 되는 건 그저 술먹는 고깃집이었달까. 평생 피자 한번 안만들어 본 사람도 돈만 있으면 몇주 피자만드는 법 배워서 피자가게를 여는 식이었다. 그러니 그런 초밥이나 피자가 전문성이나 맛이 있을리 없다. 한국은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커피에 미친 나라지만 심지어 그 커피도 20년전에는 형편없는 수준이었는데 가격만 비쌌다. 커피 가격파괴를 일으킨 것도 백종원의 빽다방이었다. 예전에는 장사가 천한 일이었다면 이젠 많이 의식이 달라졌다. 쉐프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기도 하는 시대다. 더러운 곳에서 만들어 팔던 막걸리가 이젠 고급술처럼 변했다.

 

요즘의 젊은 사람들은 주5일제 근무가 이젠 당연해 보이겠지만 그게 시작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그것은 2004년의 일로 결국 김대중 정권때에서나 준비되고 시작된 것이다. 주5일제 근무가 모든 이유는 아닐테지만 그 무렵부터 한국 사람들의 삶도 점차로 선진화 개인주의화 되었으며 여가를 쓰는 방식이 서구의 선진국 사람들과 비슷해 졌다. 개인주의자의 휴가는 다른 무엇보다 자기 혼자가 되어 여유있게 사는 것을 강조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나의 느낌이지 가장 유명한 곳을 가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특별한 계획없이 남해의 한적한 마을에서 1주일정도 산다던가 하는 것이 그런 개인주의자의 여행이며 여행을 가도 그냥 가기보다 블로그를 쓰고 자신만의 사진을 남기려고 하는 것이 개인주의자의 여행이다. 개인주의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내 자신을 의지하고 믿는 것이고 따라서 남과 똑같이 되는 것보다는 나만의 정체성과 독특함을 찾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는 것이다.

 

20세기 한국인의 휴가는 이와는 정반대였다. 사람들은 일단 가장 유명한 곳에 가고 가장 유명한 것을 먹는 일에 과도하게 매달렸다. 이를 상징하는 행위가 르브르 박물관에 가서 모나리자 앞에서 사진만 찍고 나오는 일이다. 왜냐면 파리에는 가야 할 유명한 곳이 너무 많은데 박물관을 제대로 둘러 보는 일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사 모나리자만 본다고 해도 그 모나리자를 제대로 쳐다 보지도 않는다. 거기서 뭘 느끼려고 시도도 하지 않는다. 그 모나리자를 보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사진을 찍어서 내가 거기에 가봤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니 20세기 한국인의 휴가는 쉬는게 아니라 일하는 것보다 더 심한 노동이 되기 쉬웠다. 짦은 기간동안 그 지역의 유명하다는 곳을 전부 가보고 먹어보겠다는 일정을 짜기 때문에 돌아오면 오히려 휴식이 필요했다.

 

요즘에는 욜로니 파이어니 하면서 느긋하게 자기를 즐기면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사방에 많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전부 돈의 문제이며 전에는 못살아서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또한 어느 정도는 사실이 아니다. 이것이 돈 문제 이상으로 철학과 문화의 문제라는 것은 노년층이 잘 보여준다. 아닌 경우도 많지만 많은 노인들은 이제는 시간도 돈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종종 여전히 그런 식으로 산다. 그들은 이미 부유한 한국, 선진국이 된 한국에 살고 있는데도 종종 그 한국을 즐길 줄 모르는 것같아 보인다. 개인주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은 여전히 '유명세'나 '남의 평가'같은 것에 크게 목을 맨다. 그러니까 느긋하게 자신의 감각으로 음식이든 경치든 즐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가 유명하냐, 남들이 뭐라 그러냐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런 태도로는 삶은 느긋해 질 수 없다. 그리고 물론 음식문화든 주거문화든 영상문화든 문화가 발전하지도 않는다. 맛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음식문화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겠으며 멋을 감상할 수 없는데 무슨 패션문화가 발달하겠는가. 감각과 느낌이란 낭만주의적 주장, 나를 강조하는 주장이 있어야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한국인들은 거의 정확히 절반으로 갈라져서 서로 다른 후보자에게 투표를 했다. 이것을 이해하는 방식은 하나가 아니겠지만 나는 문화라는 말을 빼놓고는 오해가 생기기 쉽다고 생각한다. 사상이나 정책 혹은 경제적 이득같은 것들도 물론 문화의 일부이고 결과이기도 하지만 이런 폭이 좁은 단어들은 왜 이 사람들이 저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느끼거나 혹은 반발감을 느끼는가에 대해 오해를 하게 한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경제적 계급이익에 반해서 투표한다. 그것은 논리나 주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보다 폭이 넓은 문화의 문제이고 신뢰의 문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스타일의 삶이 더 매력적인가에 대해 서로 다른 태도를 가지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그런데 그걸 팩트가 어떻다, 논리가 어떻다, 이득이 어떻다고 해봐야 잘 이해가 안된다.

 

지금의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문화 지체 현상이다. 이 현상은 각 세대가 문화를 흡수하는 능력이 차이가 나서 벌어지는 일이 많지만 반드시 세대간의 차이는 아니며 노인세대의 문제만도 아니다. 한국의 보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개인주의적이고 자신의 감각과 느낌을 강조하는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말하자면 중국집에 들어가서 여기 짜장면 11개요라고 주문하는 식의 일사분란하고 단순한 삶에 익숙하다. 그들은 유명 브랜드옷과 명문대의 이름에 약하다. 서로를 회장님이나 사장님으로 부르고 박사님이나 사모님으로 불리면서 자신을 부르는 호칭에 크게 목을 맨다. 그들은 감수성이 약하고 공감능력이 떨어진다. 행동의 동기가 단순히 재미라던가 멋지다는 느낌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어떤 명분을 내세워야 하고 그걸 위해서는 사람들의 생활은 희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그들은 행복하게 사는데 관심이 없는 것을 넘어서 불행하게 사는 것이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어떤 가치있는 목적을 위해 살고 있다면 그것에는 항상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다. 외롭고 재미없고 힘들고 배고프고 분노하는 현실은 그럴 때 훌룡한 것을 얻기 위한 댓가로 바뀌는 것이다.

 

저학력층, 저소득층, 고령층이 있는가 하면 부동산 투기하는 사람, 집안 재산을 크게 물려 받은 사람, 노동시간이 아주 긴 사람들 같은 사람들이 전형적인 한국의 보수 지지층이다. 문화지체라는 관점에서 이들을 보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가 보다 분명하다. 이들은 정확히 시대적인 변화를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들, 개인주의적인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볼 때 한국의 젊은 세대들 특히 남자들 중에 보수 지지층이 상당히 있다는 사실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는 과도한 입시위주의 학창시절이 현대한국의 풍요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오히려 문화적으로 폭이 좁고 단순한 사람이 되도록 했다는 것이며 둘째는 그런 사람들이 여성보다 남성속에 더 많다는 것이다. 이는 과묵하게 시스템에 복종하도록 억압되는 정도가 남성이 더 심한 면이 있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억압은 여성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군사독재가 있었던 이나라의 권위주의적 시스템 속에서 남성에 대한 억압도 더 심하면 심하지 약하지 않다. 한국에서는 남자는 불평하지 말고 묵묵히 기계처럼 일하는 인간이 되도록 훈련된다. 그들은 언제나 대의를 위해 양보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오히려 문화적으로는 지체되도록 만들고 자기 자신에게 소홀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여성만 억압받았다고 말하는 진보주의자에게 때로 분노하는 이유다.

 

이 문제에 대한 쉬운 해결책은 없다. 오직 소통이 답일 뿐이다. 자기 안에 갇혀서 빨갱이니 종북이니 혹은 또다른 어떤 악을 만들고 그것들과 싸우며 재미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한국에는 이렇게나 많다. 자신은 연탄보일러 놓을 돈도 없으면서 민주당이 종부세로 세금 폭탄을 날리고 세금을 펑펑 쓰고 있다고 흥분하는 노인들도 많다. 그들의 이웃으로서 우리는 그에 대한 책임감도 느낄 필요가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선택대로 살지만 또 뒤집어 말하면 우리의 삶이란 결국 우리의 환경이 만들어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극한의 상황에서 개인주의는 가능하지 않다. 상대적으로 유복한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을 소외시켰기에 그들은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한남이니 뭐니 하면서 한국남자를 한꺼번에 비하하는 말도 좋아하지 않지만 여자들이 이번남같은 말로 남자들을 갈라서 공격하는 것도 길게 보면 큰 효과가 없을거라고 생각하며 좋게 보지만은 않는다. 공격과 비하로는 그들은 변하지 않는다. 그건 마치 BTS의 팬이 아닌 사람을 욕하면 그들이 BTS를 좋아하게 될거라는 생각이나 마찬가지다. 그보다는 그들과 어울려 주는 것이 효과가 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명박의 당선에 상처받았고 박근혜 탄핵집회에 나온 사람들을 보면서 치유받았다. 세상에 깨어있고 따뜻한 시민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희망을 느꼈다. 문화 혹은 소프트 파워는 궁극적으로 매력에서 힘이 나온다. 뒤쳐져 있는 이웃들에게 내미는 따듯한 동참의 손만이 이 문화지체 현상을 극복하게 해줄 것이다.

 

 

 

 

 

 

 

'주제별 글모음 > 한국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제인가 문화인가  (0) 2022.06.14
경제위기와 한국  (0) 2022.06.13
문화는 철학이다.  (0) 2022.02.24
한류의 궁극은 철학이 된다.  (0) 2022.01.13
인재유출과 문화적 영향  (0) 2022.01.0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