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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경제인가 문화인가

by 격암(강국진) 2022. 6. 14.

22.6.16

최근에 나는 한 유튜브 토론을 보면서 재미있는 상황을 보게 되었다. 중국에서 자란 한 패널은 미중관계를 지극히 경제로만 바라보는데 비해 다른 한 한국 패널은 미국이 월가의 시선만으로 즉 경제만으로 움직인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이제는 워싱턴의 시각 즉 정치와 가치와 문화의 시각이 무시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내게 이 토론이 각별히 재미있었던 것은 내가 만난 많은 중국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이 바로 저랬기 때문이다. 그들은 놀랍도록 경제적 이익만이 전부 인것처럼 사고 하는 것같았다. 한국인도 중국인도 모두 똑같지는 않지만 내 개인적인 경험에서는 중국인들이 훨씬 더 사회적 협력에 무관심하며 모든 인간은 그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 뿐이라고 믿는다는 인상을 주었다. 

 

말했지만 이것은 단순히 중국인과 한국인의 차이만이 아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이런 차이가 있는데 예를 들어 나이가 든 세대들이 보다 더 경제적인 시각에 편중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간단히 말하자면 1억짜리 인생은 10억짜리보다 못하고 10억짜리 인생은 100억짜리 인생보다 못하다는 단순한 인생관을 가진 듯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있고 그들은 특히 나이가 많은 분들가운데 더 많다. 그래서 자동차가 있으면 그저 이 자동차는 1억 5천짜리고 저 자동차는 3천짜리라는 식으로 가격만 본다는 느낌이다. 자기 자신은 자동차에 대한 아무런 의견이 없고 그저 브랜드나 가격만 본다. 

 

이렇게 돈을 통해서만 세상을 보는 사람들을 경제인들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컬러의 세상을 흑백으로 보는 듯이 행동하는 경제인들은 한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경제인이라고 믿는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거나 조금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그들은 경제인 이외의 사람이 있다고 믿기 보다는 그들이 위선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믿는다. 기껏 양보한다고 해도 세상에는 소수의 아주 이상한 사람이 있을 뿐 99.9%의 인간은 그저 경제인이라고 믿으며 결국 그들의 행동과 정신은 끝에 가서는 돈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나는 종교를 믿기 때문에 단순한 경제인이 아니라고 해도 그들은 그들의 종교를 결국에는 부자되기를 비는 행위로 이해하고 만다. 이렇게 그들에게는 돈이 삶이요 행복 그 자체다.  경제인이 반드시 학벌이 나쁜 못배운 사람들도 아니다. 막시즘을 신봉하는 사람들도 사실 경제인이다. 그들은 결국 경제적 상태가 사람의 행동과 정신을 결정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건 계급뿐이며 다른 형이상학적 사고나 종교는 사기거나 마취용 아편일 뿐이다. 

 

그러나 한국도 이제는 선진국으로 분류될 만큼 부자 나라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삶이란 돈 이상의 것이다. 말하자면 삶의 흑백적인 면이상으로 컬러를 따지며 살고 싶어 한다. 어떤 사람들은 돈보다는 체면이 더 중요하고, 젊은 사람들 중에는 자기 공간과 시간을 가지고 자유로이 사는 것을 중요시 하는 개인주의자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에 가치를 두는 매니아 같은 사람들도 많다. 이런 사람들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여기서 이런 비경제인들을 문화인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문화인의 존재는 미디어를 보면 아주 자명하게 들어난다. 미디어는 경제인을 잘 보여주지 않고 반대로 문화인을 더 많이 보여주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경제인은 그 삶이 지극히 단순하고 지루하다. 그들의 의식주는 볼품이 없고 돈버는 법 이외에는 정보가 없기 때문에 미디어를 통해서 보여줄 것이 많이 없다. 소수의 매우 성공한 부자들만이 관심사가 될 뿐이랄까. 그러므로 미디어는 실제로 문화를 그 대상으로 삼으며 이것에 대해 경제인들은 미디어나 학교가 위선적이라고 말한다. 저건 방송에 나와 그냥 하는 말이지 결국은 다 돈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들은 이제 그저 사람들간의 차이로만 남지 않고 있다. 그것은 국내정치에 영향을 주고 심지어 국제관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중국이 미국을 바라보며 하는 생각과 미국이 중국을 바라보면 하는 생각은 다른게 당연하지만 그 차이는 상상이상으로 클 수 있다. 경제만으로 사고하는 중국은 미국이 손해를 무릅쓰면서까지 중국과 싸우지 않을 것이며 돈만 제공할 수 있다면 미국은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즉 경제인으로서 미국을 이해하고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미국은 미국의 가치와 문화를 위협하는 행위가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경제인과 문화인이 이해하는 사회가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와 문화는 깊이 관련되어 있다. 특히 경제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렇다. 우리가 화장지가 있는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이유는 공공장소의 화장지를 훔쳐가지 않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공공의식내지 문화의 차이가 사회적으로 연금이라던가 보험이라던가 하는 것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폭력이나 새치기를 별게 아니라고 여기는 세상에서는 싸움을 잘하는 사람들이 이득을 취하게 되고 누구나 새치기를 하게 된다. 하지만 문화가 다르면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이 달라지게 된다. 즉 누가 부자가 될 것인가도 문화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은 인간은 모두 자기 개인의 이익을 최대화하려고 하기 마련이다라는 식의 단순한 시각인 원시적 자본주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을 천사로 중국을 악마로 보는 단순한 이분법은 물론 옳지 않지만 그래도 그 두 사회를 같은 것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한쪽 사회는 민주적 견제장치인 언론의 자유나 집회의 자유 그리고 선거권이 작동하고 있는데 반해 다른 사회에서는 이런 것들이 모두 무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중국의 힘이 강대해 질 때 공포를 느끼게 된다. 최소한의 질서를 가진 민주국가는 설사 국력이 강하다고 해도 무차별적인 착취와 습격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사회에는 그것을 조절하기 위한 사법제도가 있고 그 사법제도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문화인인 시민이 적어도 어느 정도 존재해서 그런 시스템을 지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같은 나라가 국력이 강해진 경우 누가 중국인들의 만행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아무도 없다. 결국 중국이 강해진 세상에서 다수의 중국인들이 다른 나라로 들어가게 되면 그들은 그 사회의 질서를 망가뜨리고 말 것이다. 그들로서는 그저 이익을 최대화하는게 당연하니까 그렇다. 이런 일은 어느 정도는 미국인들에 의해서도 행해진다는 것을 이따금씩 미군 범죄자 문제로 고생하는 한국인들은 알고 있다. 힘이 약한 나라에서 특권층처럼 행동하는 미국인을 통제하지 못하는 한국인들은 괴로움을 겪는다. 그래도 미국에는 호소할 사법 시스템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한다. 과연 중국같은 나라가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뭘 할까? 그것이 어떤 세상일까? 왜 중국인들이 몰려온 제주도에는 중국인에 대한 거부감이 가득한가? 

 

불행히도 경제인들은 이같은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타인의 삶을 흔들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리석고 순진한 문화인들을 가르쳐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종종 현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들이 말하는 현실이란 인간은 모두 경제인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그러므로 경제인들은 미안해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약탈을 실력을 보여주는 행위라고 생각하며 문화인들이 어리석은 바보 몽상가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문화인에게 있어서는 장기적으로 봐서는 문화가 경제의 핵심이기도 하다. 단기적으로는 경제를 무시하고 문화를 따르는 것이지만 경제만을 따를 때 삶의 질이 떨어지게 되고 그것을 돈으로 메꾸려고 한다면 너무나 큰 돈이 들 것을 알기 때문이다. 패션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패션은 그저 돈낭비지만 그걸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은 또한 큰 소득원이 될 수도 있다. 

 

사실 경제인과 문화인의 싸움은 아주 오래된 것이며 지금의 경제인도 과거에는 문화인이었다. 돈이 뭔지 모르는 수렵채집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돈으로 물건을 사고 파는 문명인은 괴상한 사람들로 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돈을 쓴다는 것, 돈이라는 시스템을 믿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나의 이익을 뒤로 연기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종이를 받고 고기를 판다는 것은 그 종이로 나중에 내가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문명인인 수렵채집인에게 시장을 믿는 사람들은 어리석고 순진한 사람들로만 여겨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사회는 더욱 복잡해 졌다. 그래서 가치는 단순히 돈만으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고 비슷한 싸움이 경제인과 문화인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문화적 규율을 지키고 신뢰를 얻는 것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아는 문화인으로서는 그냥 숫자만 보고, 화폐만 보는 경제인이 도시에 나타난 원시인처럼 답답하다. 그들은 입만 열면 이익을 말하지만 뭐가 좋은지 나쁜지를 구분도 못하는 것같고 따라서 경제인이 열광하는 사람은 문화인에게는 사실상 강도처럼 보이고 그들의 선택은 자해처럼 보일 수 있다. 왜냐면 같은 사회를 살고 있기 때문에 그 경제인들도 문화적 시스템의 혜택을 보고 있는데 스스로 그 문화적 인프라를 파괴하는 걸 선택하기 때문이다. 

 

경제인가 문화인가에 절대적인 답은 없다. 그건 환경 특히 사람들에 달린 문제다. 하지만 어느 쪽이 미래인가는 분명하다. 모든 문화적 시도가 미래는 아니지만 미래는 분명 지금의 사람들의 삶보다 복잡한 것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경제와 문화간의 문화적 마찰은 미래와 과거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인은 세계를 자꾸 뒤로 되돌릴려고 한다. 모든 이가 배고프고 폭력과 불법이 넘쳐나던 시대가 현실이라고 주장하면서 그게 아니라고 말하는 문화인을 사기꾼이라고 말한다. 문화인에게 이런 경제인은 정의롭지 못하고, 뻔뻔하며, 일관성도 없는 야만인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싸움은 큰 의미로는 결국 문화간의 싸움이다. 그리고 이 문화간의 싸움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세상이 복잡해 짐에 따라 그리고 미래가 다가옴에 따라 진짜 중요한 것은 문화에서 나오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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