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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환경위기와 국제 질서

by 격암(강국진) 2022. 8. 26.

22.8.26

요즘 세계 외신에서 백년만의 기후, 천년만의 기후라는 식의 기후 이변에 대한 보도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 위기는 몇십년안에 되돌릴 수 없는 더 큰 위기가 될거라는 목소리도 많다. 그러나 이를 위한 국제공조라는 것은 거의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하는 느낌이다. 세계기후협약이라는 것은 1990년에 시작되었고 교토의정서라는 것도 2005년에 발효되어 2020년에 끝났고 그것이 파리기후협약으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이 기간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 그래프를 보면 인간들이 뭘 했다는 흔적은 보이질 않는다. 

 

사실 요즘은 상황이 더 안좋아보인다. 2008년 미국 경제위기 이후 세계는 날로 갈라지기만 하는 것같다. g7이니 g20이니 모이기만 할 뿐 실은 그 내부적으로 갈라져서 서로 못잡아먹어 안달인 것이 현실이니까 말이다. 이런데 지난 30년간 없었던 기후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대처라는 것이 금방 나올 수가 있을까? 이런 세상을 구할 에너지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국가로 이뤄져 있다. 나는 이것은 분명 현실이며 적어도 상당한 기간동안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국가가 갑자기 사라질리도 없고 설사 국경선이 사라진다고 해도 그것이 반드시 재앙을 불러오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대표적인 예가 EU일 것이다. 완전히 하나의 국가가 되기전에 경제공동체를 유지하는 것만해도 어렵다는 사실을 EU는 보여준다. 우리나라와 중국이나 베트남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미래는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국가라는 틀은 유지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국가로 이뤄져있다는 사실은 시급한 범세계적 문제를 해결하는데에는 큰 방해가 되고 있는 것같다. 우리는 국가로 이뤄진 국제질서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과거의 질서를 지켜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문제는 21세기의 문제인데 그걸 적어도 수백년은 된 낡은 관습에 의존하는 시스템 속에서 해결하려고 하니 해결이 더욱 어려운 것이다. 기후협약인 교토의정서가 채택된지 8년만에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비준없이 발효된 것만 봐도 이것을 알 수 있다. 셀 수 없는 나라들이 모여서 합의를 하기도 어렵지만 그 합의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각 나라의 대표들이 자기 나라로 가서 비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각각의 나라는 자기 나라 내부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현실이 있기 때문에 그런 비준이 쉽지 않을 것은 뻔한 일이다. 게다가 적어도 정권을 가진 모든 집단이 공익만을 위할 것이라는 생각도 순진하다. 그들은 그런 시스템속에서 자기이익을 챙기려고 할 것이다. 그걸 위해 국민홍보도 할 것이다. 전세계 인구의 80%가 찬성하는 일이 있다고 해도 이런 시스템속에서는 그런 의지가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다. 

 

국제질서라는 틀을 보면 지금의 세계에서는 지구가 구원받을 방법에 책임이 있는 건 주로 미국이다. 나는 미국이 기후 문제를 곧 해결할거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미국만이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미국은 내부의 경제난 때문에 오히려 국제적 책임으로부터 점점 더 등돌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세계에서는 지구가 구원받을 방법에 대해 책임이 있는 건 주로 미국이라는 문장에는 어느 정도 주목할만한 진실이 들어 있다.

 

그것은 국가로 이뤄진 이 세계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미국이기 때문이다. 세계 유일 슈퍼파워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은 아니다. 경제와 국방에 있어서 미국은 단순히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할 수 없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미국은 지도자 국가로서 세계질서를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고 미국은 그것을 통해 많은 이익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이 한국을 포함한 여기저기에 주둔하고 있고, 미국이 이나라 저나라의 정책과 권한에 제한을 가하고 있다. 한반도 분단의 비극이 미국때문은 아니지만 한반도의 질서에 미국이 크게 관여하는 것이 아주 쉬운 예다. 북한이 코로나 때문에 백신이 없고 먹을 쌀이 없는데도 남한이 자유로이 북한과 교류할 수 없는 것이 북한만의 문제는 아니다. 물론 북한을 믿을 수 있는가하는 문제도 있지만 미국의 양해가 없으면 터무니 없는 일도 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역할을 하면서 받는 댓가가 너무 작다고 할지 모르지만 다른 나라들은 미국이 하는 일은 없지만 댓가가 너무 크다고 할 것이다. 결국 세계가 변할 때가 된 것이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지는 부정할 수 없는 또 하나의 파워는 소프트파워다. 미국의 소프트파워가 전보다 떨어졌는지는 몰라도 지금의 세계에서 미국 컨텐츠와 미국 문화를 제외하고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가장 유명한 영화배우와 가수가 거의 모두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의 학문의 중심 역할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과 지식인들이 미국에 있다. 그리고 물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언론들도 미국에 많다. 넷플릭스도 애플도 아마존도 페이스북도 다 미국회사다. 북한을 비롯한 모든 나라가 영어를 공부한다. 

 

기후문제는 어쩌면 이런 미국중심의 질서에 대한 치명타일 수 있다. 앞에서 말한대로 미국이 국제문제에서 지도적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공감대가 퍼지면 국제질서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것이다. 사실 이 국제질서라는 것은 2차세계대전이후의 것이 유지되고 있는 낡은 것이다. 미국이 역할을 못하는데 왜 세계의 기축통화는 달러여야 하나? 그런 미래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러시아 중국 일본 한국이 합치면 세계 패권국가가 되기 충분하지 않을까? 상상하기 어렵지만이라는 말을 하면서 이 말을 하는 이유는 현재의 질서가 흔들리면 사람들이 온갖 상상을 하면서 대안을 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나는 기후문제같은 거대한 문제를 대처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정치적 경제적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 에너지를 꺼집어 낼 수 있는 곳은 낡은 국제질서의 변동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혁신이 있어야 움직인다. 그렇지 않으면 수동적으로 문제를 방관할 것이다. 세상이 바뀔 때 거기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몫이 있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투자할 것이다. 

 

어떤 국제질서의 변동인가? 누가 지금의 세상에서 소외되어 있는가? 하나는 국가가 아닌 개인들이다. 또 하나는 정치적 영향력이 약한 약소국이며 낡은 국제질서안에서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나라며 일본을 제외한 비서방국가다. 

 

먼저 개인부터 시작해 보자. 세계가 국가로 이뤄져 있다는 관점은 국민의 대표인 정권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주고 있다. 왜 협상과 보상은 국가와 국가사이에서만 일어나야 하는가? 왜 새질서를 논하는 것은 정권의 대표들이어야 하는가? 민간분야에서 직접 국가를 초월하여 논의를 진전시키고 행동하는 일이 강해질 때 오히려 국제질서하에서 어떤 협력이 일어나기 쉬울 것이다. 국가를 없애야만 개인들이 자유롭게 행동하고 발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제질서라는 게임은 그대로 두고 우리는 그와 별도로 개인들의 게임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관료시스템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내기에는 국제질서는 너무 낡아 있다. 행동하는 시민들의 집단 행동이 있어야 세상은 변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다수의 개인을 뭉치게 하는데에는 강력한 소프트파워가 필요하다. 그래서 미국의 소프트파워가 세계를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시민행동이라고 해도 역시 미국의 운동이 씨앗이 되어야 세계로 퍼질 수 있는 경향이 컸다. 미국이 아니라고 해도 독일이나 프랑스나 영국같은 서구권 국가가 그 역할을 하는 일이 많지 한국이나 베트남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그런 일을 시작하기는 더 어려웠다. 

 

가치관적 문화적 동질감이 운동에는 필요하다.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음식을 즐기는 그런 문화적 공감대가 없이는 시민운동이 진짜로 커지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서구문화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시민운동도 서구시민 운동이 중심이 되기 쉽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는 한국의 역할이 더 커질 수도 있을거라고 본다. 한류의 힘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BTS의 미국팬들이 정치운동을 했다는 사례같은 것을 통해 들어난다.  미국주도의 시민운동은 물론 앞으로도 여전히 큰 역할을 하겠지만 한국주도의 시민운동도 큰 의미가 있을 수 있으며 이것은 다음에 말할 다른 국제질서의 변동의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국가에게 맡기고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개인이 아니라 개개인이 직접 행동에 들어가는 변화가 있어야 세상에는 진짜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세계를 바꿀 에너지를 가진 또 다른 변동은 아시아의 부상이다. 서구중심의 세계는 낡았다. 그들은 보수적이고 세상을 바꿀 진짜 에너지는 더이상 없는 것처럼 보인다. 세계는 아시아에 새로운 눈을 뜰 필요가 있다. 이 지역의 나라들은 본래 몇백년전만 해도 유럽이상으로 잘 살았으며 역사가 길고 문화가 풍부한 지역이다. 이들은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기도 하며 인구로 보면 세계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들은 세계질서에서 소외되어 있다. 이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주로 다큐같은 컨텐츠다. 미국 주도로 생산해 내는 문화컨텐츠를 보면 세계에서 가장 소외되어 있는 것이 아시아인이다. 백인 다음이 흑인이고 흑인다음이 아랍인쯤일 것이며 아시아인은 이보다도 더 뒤에 있다. 

 

이런 현실을 잘 보여줬던 것이 바로 한류였다. 한국컨텐츠가 유행하고 나서야 아시아인도 잘생길 수 있고, 아시아 남자가수의 컨서트에 백인 소녀들이 엄청나게 몰려드는 일이 보편화되었다. 미국에서는 한국인은 물론 베트남인이나 중국인 남성조차 한류의 인기로 아시아인인 자신이 데이트 상대로 고려가능한 사람이 되었다고 감사한다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설사 서구가 아시아의 사회적 위치를 격상시켜줄 의도가 있다고 해도 어떻게가 중요하다. 아시아에는 한국, 일본, 중국 그리고 인도같이 세계에 그 힘을 자랑할 만한 나라들이 있다. 하지만 단순히 경제규모나 인구만으로 세계 국제질서에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소련이 강력한 힘을 가진다고 해서 미국이 소련을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국제적 힘의 질서가 순조롭게 변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대안이 될만하다고 생각할 문화적 리더쉽을 보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도 단순히 거대 경제때문에 리더국가가 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미국식 삶에 대해 인정해 줄 수 이었다. 그래서 미국이 세계의 중심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중국이라면 그 경제력이 미국을 능가한다고 해도 타국에게 불안감을 줄 뿐이다. 대학살을 자행해도 언론의 비판조차 허락하지 않는 나라의 질서를 우리 나라 질서 안으로 편입한다는 것이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두가지 요구 즉 아시아의 부상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과 공존할 수 있는 사회, 대안적 삶을 보여주는 사회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나라가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나라는 미국처럼은 아니라도 세계적 질서의 한 축을 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많은 나라가 미국같은 나라가 되는 것을 꿈꾸고 프랑스나 독일같은 나라가 되는 것을 꿈꾸었다. 즉 미국은 모범국가였고 미래였다. 그런데 미국이 더이상 미래의 모범역할을 잘 못해내는 때에 새로운 희망과 길을 가르쳐주는 나라가 필요한 것이다. 

 

이것을 결정하는 것은 소프트파워다. 힘만 세지고 문화가 설득력이 없다면 오히려 중국처럼 위협으로 여겨질 뿐일 것이다. 나는 한국이 앞으로 어느 정도나 성취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비관적인 사람들의 말대로 한국에도 문제가 너무 많고 한국도 너무 약하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당선된 윤석렬을 보고 있으면 한국이 국제질서에서 지도자 역할을 한다는 것에 대해 비관적이 되게 된다. 한국이 군사,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요즘 빛나고 있지만 이때 국제질서에서 의미있는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면 다른 나라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세상은 빨리 변한다. 

 

그러나 설사 한국이 그런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세계는 지금 하나가 될 필요가 있고 그런 스타국가의 부상이 필요하다. 그때만이 인류는 기후문제같은 거대한 적과 제대로 싸울 준비가 될 것이다. 새로운 비전과 희망에서 에너지도 나오는 것이다. 미래는 모르는 거지만 지금은 한심하다. 부자는 더 문제가 나빠져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같고 가난한 사람들은 문제를 만든 것도 부자고 나는 지금 가난과 싸우기 바쁘니 부자가 해결하라고 하는 것같다. 이래서는 엄청난 재난이 닥치기 전에는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위기가 기회다. 한국이 제발 정신차리기를 바란다. 빛나는 미래가 코앞에 있는데 왜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고 미적거리기만 하는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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