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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공평함에 대하여 2

by 격암(강국진) 2022. 5. 17.

22.5.17

공평이란 무척이나 중요한 단어다. 우리는 가족관계에서 노사관계 지역간의 관계에서 남녀관계에 이르기까지 아주 많은 것에 대해서 공평을 말한다. 오늘아침에는 한 대학에서 대학총장선거문제로 시위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것도 따지고 보면 대학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낡은 질문과 깊게 관련되어 있고 결국 답은 공평이라는 단어로 돌아오는 문제다. 학생들말은 지금의 총장선임은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평이 뭘까?

 

아쉽지만 우리가 공평에 대해 말할 때 가장 먼저 지적하고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공평에 대한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정의는 없다는 것이다. 공평이란 말은 워낙 우리의 피부에 가깝게 느껴져서 한발 물러나 생각하기 어렵지만 생각해 보면 문화나 상식이라는 말들이 절대적이지 않고 역사적 결과물들이며 결코 쉽게 보편화할 수 없다는 말은 거의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런데 문화와 상식이 상대적인데 어떻게 공평은 절대적일 수 있겠는가? 우리는 현실적으로 우리 입맛에 맞게 어떤 특정한 사안만 보편성을 주장하고 자신의 국소적 특권은 모른채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고 바로 그 정도의 차이가 중요하지만 인간이라면 안 그럴 수가 없다. 그러니 특정 사안만 골라 그것을 절대화하는 것도 알고 보면 이기적인 것이다. 때로는 급진적 개혁이 피할 수 없을 때도 있지만 이런 걸 생각하면 개혁은 기본적으로 한발한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옆집아이는 이런데 나는 왜 이런가라는 생각은 어떤 관점에서 정당하지만 어떤 관점에서는 이기적이다. 예를 들어 부모에게 그렇다. 다른 사람은 다른 댓가를 치루고 있는데 나만 자기몫을 바꿔 받으면 다른  사람의 피해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상상이상으로 크게 다르다. 나만해도 대학생일 때 대학의 주인은 이사회나 교수나 학생이 될 수는 있어도 행정직원이 될 수는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내가 대화를 나눠 본 행정직원들은 그걸 당연시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대학이란 직장이며 교수나 학생은 그저 손님에 지나지 않았다. 맥도널드와 대학을 같은 선상에서 놓으면 교수는 대개 행정직원보다 근무기간이 짧은 알바이며  학생은 햄버거를 사러온 고객에 지나지 않는다. 고객이 상점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학생은 가장 대학의 주인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대학에 대해 이런 발상을 한다는 것이 황당했지만 이것은 사람의 생각이란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경험이기도 했다. 

 

이렇게 관행에 의해서 결정되고 그저 작은 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영향받는 것이 공평에 대한 우리의 감각이다. 때문에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이나 동료같은 자기 주변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그냥 상식으로 여기고 산다. 이것이 엄청나게 많은 비극들의 출발점이다. 사람들은 그저 몇사람이 나에게 동의해 준다거나 어떤 책에 나온다는 사실로 자신의 생각을 자명한 것으로 여기고 그들의 공평에 대한 감각을 바꿔버린다.

 

예를 들어 요즘 한국의 결혼이 드물어지고 출산률이 낮아지는 것에 남녀간에 생각하는 공평의 감각이 서로 너무 다른 것이 기여하는 바가 분명 있어 보인다. 불이 안나는 마을에 있는 소방관은 놀고 먹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크게 문제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누군가의 존재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한국 여자들은 한국 남자들이 여성의 존재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한국 여성들은 한국 남자들의 존재의미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말인가? 그건 우리가 어떤 세상을 사는가에 따라 다르다. 우크라이나에서처럼 당장 전쟁이라도 터져서 적군이 여성들을 강간하는 상황이 되면 남자들의 가치는 갑자기 크게 오를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런 세상을 살고 있지 않다. 사실 한국은 여성안전에 있어서 세계 제일 수준으로 서구선진국에서보다도 훨씬 더 안전하다. 하지만 그럼 어떤 세상이 당연하고 자명한 세상인가? 그런게 있기는 한가? 그런게 있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쓸 수 있는 자원은 한정적인데 그게 도달가능하고 유지가능한가? 세계에서 아동에게 가장 안전한 나라만 될 수 있다면 어떤 희생을 치뤄도 되고 세계에서 노동자권리가 가장 강력한 나라가 된다면 그 나라가 어떤 나라가 되어도 좋은가? 

 

나는 세상에 공평했는데 세상은 일방적으로 나에게 공평하지 못했다라는 생각은 대개 위험하다. 이런 거 저런 거 따지면 끝이 없으니 그냥 혼자서 살겠다고 하면 해결책이 되는 것같고 그건 자유지만 그걸 잘난 척 떠드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다. 이건 사회적 붕괴다. 인간의 힘은 사회적 연대에서 나오는데 모두가 각자 살겠다고 하면 결국 그 힘이 점점 사라진다. 남자건 여자건 그 끝이 좋을리 없다. 이건 자발적으로 가는 망국의 길이다. 사실 속편하게 혼자살겠다라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사회가 얼마나 안정되고 편안한 곳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각자의 삶은 각자의 선택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최소한 감사하고 겸허해야 할 필요가 있다. 속편하게 혼자 살겠다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희생자라기 보다는 혜택을 넘치게 받은 행운아들이다. 그런 교육, 그런 기회, 그런 환경이 있으니까 그런 소릴 쉽게 하는 것이다. 이 사회가 더 많이 내놓아야 한다고 쉽게 화만 낼 처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자신의 섬속에 살면서 자신과 다른 상식을 가진 사람을 고집이 센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말이 꼭 틀린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 말을 너무 쉽게 해서는 안되고 특히 비난이나 비하의 의미로 써서는 안된다. 소신과 이해 그리고 고집은 사실 다 같은 말인 경우가 많다. 모두가 여자를 비하하는 사회에서 여성을 동등하게 취급해 주는 남자가 있다면 그런 남자가 바로 고집센 사람, 모가 난 사람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가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인간평등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이고, 누가 고집이 센 것일까? 소수의 의견이라고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다수의 의견이 옳았다면 우리는 지금도 침팬지처럼 살고 있을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했을 때 우리가 그나마 어느 정도 공평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할 것이 몇가지 있다. 하나는 약간 고독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과 교류하며 사는 것은 좋지만 너무 그것에 휩쓸려서는 안된다. 의식을 가지고 스스로를 지키며 사는 것을 그만두는 순간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휩쓸리고 어느새 뭔가가 당연한 사람이 되기 쉽다. 후회해도 뒤로 갈 수 없게 코가 꿰인다. 주변을 보라. 걸핏하면 술먹고 우리가 남이야를 외치거나 호들갑을 떨면서 각종 감탄사를 남발하기를 좋아하고 잘 모르는 일도 뻥뻥 속시원히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넘쳐나지 않는가? 그런 사람들은 대개 자기를 이미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그래서 자기가 뭘 믿고 있는지를 두번 생각하지 않고 자기 발밑을 보지 않는다. 그래서 임대아파트에 산다고 차별하고, 경기도에 산다고 차별하고, 여자라서 차별하고, 자동차가 조금 더 비싸거나 아파트 평수가 조금 더 크다고 차별하고, 직급이 조금 높다고 차별하는 그런 인간이 된다. 그 모든 건 원래 그런거니까 말이다. 

 

또 하나는 겸손하고 세상에는 항상 무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나는 화도 내고 욕도 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공평한 인간이 되고는 싶지만 노력해도 어차피 완벽한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나를 지키고 나를 돌아보되 마음가는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수 밖에는 없다. 다만 그 마음이 자기 마음이라면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혹시 이게 다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야 한다. 무지는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대적 의미에서는 언제나 불공평하다. 단지 조금 더 공평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안타깝지만 이렇게 공평한 인간이 되면 주변사람들이 당신을 공평한 사람으로 여겨줄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대개는 당신은 매정한 사람, 인간미가 없는 사람, 고집센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다. 당연한 걸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따지는 사람, 괜히 하던대로 안해서 분위기 망치는 사람으로 여겨지기 쉽다. 다들 조선족을 차별할 때 혼자서 조선족과 친구하면서 친하게 지내면 어떤 분위기가 될지 상상해 보라. 그래서 여러분은 선택을 해야 한다. 불공평한 줄 알면서 당신과 강하게 인연을 맺은 사람들만을 각별히 여기고 그 선 바깥의 사람들을 철저히 무시하고 그들에게 잔인해 져라. 그러면 당신은 누군가에게는 공평한 인간으로 불릴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죽일놈이 될 수 있다. 아니면 욕을 먹으면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진짜 공평을 향해 노력하는 인간이 되라. 그러면 마음은 조금 더 편할 것이다. 유한한 사람의 삶이기에 어떤 길도 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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