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얄팍한 좋은 생각

by 격암(강국진) 2022. 7. 10.

22.7.10

근간에 어머니에게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 노인정에 혼자 계시다가 정수기 직원 말에 넘어가서 노인정 정수기 계약을 본인 명의로 사인을 하신 것이다. 일전에 이 비슷한 일로 난리가 난 경험이 있어서 그걸 다시 노인정 명의로 바꾸려고 하는데 노인정 사람들이 뭘 걱정하냐 괜찮다 하면서 차일 피일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화가 난 어머니가 크게 싸우는 일이 있으셨던 것이다. 전화로 하소연하는 어머니에게 다른 말을 한 끝에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이 온갖 그럴 듯한 이야기로 어머니에게 또 사인을 하라고 할 테니 하나만 기억하고 아침마다 외우라고 말이다.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구호였다.

 

'나는 사인을 하지 않는다!'

 

이미 80대이신 어머니가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얼마나 세상일에 밝으실 것인가. 조심해서 판단한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아예 혼자서는 사인을 하지 않아야 한다. 언제나 아들이나 며느리같은 보호자가 있을 때만 사인을 해야 한다. 나는 이렇게 말씀 드렸다. 

 

그리고 나서 보니 어머니에게 또다시 외워야 한다고 할만한 구호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얄팍한 좋은 생각에 넘어가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저런 좋은 생각이 많다. 그 좋은 생각들은 저절로 스스로에게 떠오르기도 하지만 주변에 사람들이 많으면 그 사람들에게서 마구 넘쳐나듯 던져진다. 우리는 이걸 조심해야 한다.

 

그럼 이 얄팍한 좋은 생각이란 무엇인가? 그것들은 몇가지 특징이 있다.  첫번째, 세상일의 복잡함과 미래의 불확실함을 과소평가한다. 두번째, 어느 일이 가장 중요한가 하는 가치평가가 실종되어 있다. 세번째, 빠르게 던져지는 생각들일 뿐, 차분히 한 호흡 쉬면서 말해지는 생각이 아니다. 예를 들어 하루에 백원씩 1년을 벌면 3만 6천 5백원이고 3년이면 10만원이 된다는 식의 생각이 대개 그렇다. 병원에 간 김에 시장도 보겠다거나 비뇨기과에 간 김에 정신과도 가보겠다거나 하는 생각이 대개 그렇다. 바쁘고 돈이 드는데 마땅히 해야 할 일도 이번에는 좀 안하면 어떠냐는 생각이 대개 그렇다. 

 

세상은 변한다. 오늘 백원 벌 수 있다고 내일도 백원 벌지 어떻게 알며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일은 2백원 벌 수 있는 다른 기회가 없을 지는 어떻게 알 것인가? 달걀로 병아리를 만들고 닭을 만들고 그걸로 농장을 만드는 꿈은 허망한 것이다. 중간에는 수없이 많은 다른 일들이 있을 것인데 그걸 망각한 생각은 얄팍한 좋은 생각이다.

 

뭐뭐 하는 김에 저것도 하자는 생각도 대개 그렇다. 무엇보다 첫번째로 하는 일이 어느 정도 복잡한 것인지는 확실한 것인가? 그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생각해 보았나? 아무도 수능 시험 보러가는 길에 밭에 들러서 물도 좀 주라거나 이웃집에 들러서 말을 좀 전해 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논리적으로는 그걸 할 수 있을 법해도 밭에 물을 준다던가 이웃집에 말을 전해 준다는 일이 수능시험에 영향을 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왜 어떤 일을 점점 더 복잡하게 만드나. 뭔가를 한꺼번에 해치우는 것이 언제나 현명한 것은 아니다. 물론 미리 계획을 잘 세우고 점검을 잘 한 후에 그렇게 일을 하면 일의 효율이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자면 예측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고 그래서 미리 잘 생각을 하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니까 즉흥적으로 습관적으로 뭐뭐하는 김에 뭐하자는 생각은 대개 얄팍한 좋은 생각이 된다. 

 

또한 얄팍한 좋은 생각의 대표적인 특징은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에 대한 가치판단이 없는 것이다. 냉장고를 사면 프린터를 끼워준다고 해보자. 냉장고가 훌룡하다면 이것도 좋은 일이지만 프린터가 공짜라고 해서 냉장고를 사는 사람은 얄팍한 좋은 생각에 넘어간 것이다. 즉 냉장고라는 비싼 물건을 사는데 있어서 그 중심이 냉장고가 되어야하는데 얼마하지도 않고 보증도 별로 없는 게다가 아마도 지금 프린터가 있어서 필요도 없는 싸구려 프린터에 대한 욕심에 이왕이면 하면서 냉장고를 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은 이런 상술에 지금도 넘어가고 있고 비슷한 식으로 일들을 처리하고 있다. 

 

눈앞의 작은 이익이 있을거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자꾸 큰 것을 잊어버린다. 그래서 크고 넓은 길, 상식적인 길을 가는 사람들은 바보같고 심지어 어리석어 보여서 그들을 비웃어 주게 된다. 그러나 지름길을 찾는 사람들은 마치 붉은 신호등에 멈추는 사람들을 비웃는 사람들이나 같다. 경우에 따라 붉은 신호등에 그냥 가도 사고 날 확률은 거의 없다. 하지만 사고가 한번 나면 어찌될 것인가? 그게 몇분 먼저 간 이득들로 보상이 되는 일인가? 배우자나 가족에게 거짓말을 하는 일도 비슷하다. 별거 아닌 일이지만 거짓말을 한번 하면 좀 편해서 거짓을 말하기 시작하면 거짓이 습관이 된다. 나만 그런가? 상대방도 눈치를 채고 서로 서로 거짓을 말하는 일이 일상이 된다. 이래서 좀 편하고 좋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런 일중에 한번만 사고가 있어도 불신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증가할 것이다. 불편하고 꺼림직할 때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될 것이다. 그 지름길이 정말 현명한 일이었을까? 

 

세상에는 딸이 아프고 부모님이 아파도 이러저러하니 시간과 돈을 낭비할 것없다고 냉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언뜻 보면 시간과 돈을 절약하는 것이 옳은 것도 같다. 나 대신 그 일을 처리할 사람도 있고 나 없어도 문제가 크지 않을 것같기도 한 상황은 많이 있다. 딸이나 부모님도 아마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이 다 얄팍한 좋은 생각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괴담중에는 기러기 아빠가 한국에서 죽었는데 그 엄마만 잠깐 한국에 귀국하고 자식들은 공부해야 하니 그냥 미국에 있었다는 괴담이 있다. 진실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이것은 얄팍한 좋은 생각의 예다. 아이들에게 내가 공부하고 시험보는 것이 심지어 부모가 죽은 일보다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일이 정말 이익이 되는 일일까? 그 아이들이 불효자가 되는 것은 둘째 치고 이런 식으로 가치판단을 하면서 살아서 정말 그 아이들은 앞으로 자기 인생에서 소중한 것을 지키며 살 수 있을까? 

 

세상을 살다보면 정말 수없이 많은 이익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그리고 그 이익들은 공짜가 아니다. 아닌 것같아도 대개 이쪽을 택하면 저쪽을 얻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세상에 공짜만큼 비싼게 없다고 하는 말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좁은 시야로 주변에서 떠들어대는 그 작은 이익에만 눈이 팔리면 우리는 정말 중요한 것을 잊게 된다. 생각없이 얄팍한 좋은 생각을 말하는 사람들도 넘쳐나지만 고의로 그러는 일도 있다. 바로 사기꾼이 하는 일이 그런 것이다. 근사한 사진을 보여주고 이 땅을 지금 사면 10억을 번다는 식으로 유혹하는 사기꾼은 그 땅의 실체를 차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한쪽 손에 신경을 집중하게 하고 다른 손으로 사기를 치는 마술사처럼 사기꾼은 눈앞의 이익에 집중하게 하고 시간을 주지 않고 그 선택을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이런 이야기들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처럼 이런 이야기들을 다시 점검해 보면서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일상속에서는 실로 아찔할 정도 얄팍한 좋은 생각들이 넘쳐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이라는게 있다면 그 사람의 첫번째 차이점은 모든 일을 신중하고 천천히 한다는 것일 것이다. 똑똑하니까 빠르게 정답만 맞히는 것이 현명한 사람의 특징이 아니다. 그래서 어설픈 똑똑이들은 빠르게 일처리를 해서 사기꾼에게 제일 잘 속는다고 한다. 사기꾼에게만 속을 것인가? 세상에는 부질없이 얄팍한 좋은 생각들을 대량생산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강권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자기 일도 아니면서 비웃고 바보취급해 가면서 안타까워 한다. 빨리 빨리 이런 저런 생각들을 따라하면 답이 딱 나오는데 왜 안하냐는 것이다. 그러니 어리석은 삶으로 가지 않으려면 이런 사람들과의 거리를 어느 정도 지켜야 한다. 아니면 우리의 귀속으로 얄팍한 좋은 생각들이 마구 쏟아질 것이다. 우리 삶이 고되고 어려운 것은 대개 이런 얄팍한 좋은 생각들 때문이다. 지름길로 가겠다는 생각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날마다 외워야 한다. 

 

'얄팍한 좋은 생각들에게 넘어가지 말자!'

 

 

 

 

'주제별 글모음 > 생활에 대하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의 죽음  (2) 2022.07.18
나를 지키기, 생활을 지키기  (0) 2022.07.17
어떻게 살 것인가 2  (0) 2022.07.04
공평함에 대하여 2  (0) 2022.05.17
다시 무지와 악  (0) 2022.04.2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