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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친일 그리고 믿음의 공동체

by 격암(강국진) 2022. 10. 11.

22.10.11

어떤 사람이 교회에 다니면서 그 곳의 신도들에게 "예수는 사기꾼이며 그가 말하는 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존중해야 한다.'라고 말한다고 하자. 이것은 물론 기독교 신자들을 화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도대체 왜 교회에 다니냐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사코 교회에 다닐 것을 주장하며 자신은 그저 사상의 자유를 실천한다고 말한다. 이런 말이 정말 정당화할 수 있는 말일까? 

 

정진석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조선은 일본의 침략으로 망한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한 것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이것은 같은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에게 왜 한국인으로 살고 더구나 정치까지하려고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일본에게 충성하여 한국을 망하게 하려는 스파이내지 국가 반역자가 아니라면 도대체 왜 한국에서 정치가로 살려고 하는가? 

 

그 답이 사상의 자유따위가 될 수는 없다. 나는 정신석의 주장이 불가능하고 그런 걸 믿는 사람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주장은 가능하고, 어떤 문맥에서 허용되어야 한다. 마치 기독교가 있어도 불교가 허용되어야 하는 것처럼 일본인이 그렇게 말한다고 하면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런 믿음이 완전히 불가능하고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이 경우는 사상의 자유가 맞다. 다만 교회에서 교인으로서 불교를 외치는 인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건 공동체의 기본을 망가뜨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건 반역이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는 역사에 대한 주장이란 세종의 이름이 이도라는 것처럼 아주 기초적인 사실을 제외하고 나면 증명된 사실이 아니고 과학이 아니며 믿음이고 주장이라는 사실을 지적해야겠다. 나는 식민사관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몇몇 사료를 들이대면서 자신들의 '믿음'을 증명된 것으로 말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그런 믿음이 그럴듯하던 하지 않던 그것은 믿음이지 증명된 사실이 아니다. 조선은 일본의 침략으로 망하지 않고 스스로 망했다는 주장에 대해 제 아무리 많은 증거가 있다고 해도 역사는 반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이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이웃으로 존재했을 때 조선이 망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을 수 있는가? 그건 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인간의 뻔한 미래 예측이 얼마나 자주 틀리는지 우리는 기억해 낼 필요가 있다. 다른 무엇보다 해방 직후 미래의 한국이 지금처럼 살 수 있을거라고 예측한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한국이 민주화될거라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믿었을까? 그런 암담한 상황에서도 어차피 한국은 발전하고 민주화하기는 글렀으니 한국을 다시 다른 나라로 병합해야 한다는 주장은 결과적으로 틀린 것이었다. 그런데도 조선은 스스로 망했다는 주장이 믿음이 아니라 사실일 수 있는가? 

 

이 믿음이냐 사실이냐의 구분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면 국가공동체를 포함하여 모든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믿음으로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동체란 서로가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고 그 믿음을 배신하지 않을거라는 서약을 통해 유지된다.  그것이 없으면 유지될 수 없다. 제 아무리 많은 약속을 한다고 해도 나를 배신 할 것이 분명한 사람과 결혼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이 나에 대한 정보를 가지게 되면 나는 심각한 위험에 빠질 수 있는데 어떻게 그 사람을 믿고 의지하는가? 애초에 믿음이 중요하지 않다면 한국 대통령을 일본사람이나 중국 사람을 시키면 왜 안되는가? 

 

우리는 조선에 대해 많은 비판을 해야 하고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으로서 그 비판은 긍정을 전제한 부정이어야 한다. 즉 조선과 조선인을 기본적으로 긍정한 후에 이러저러한 일은 아쉽다는 것이어야지, 조선인은 본래 가망없었다는 부정을 전제하고 나면 설사 조선을 칭찬하더라도 의미가 없다. 조선은 자력으로 생존 불가능했다는 믿음은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이걸 전제하고나면 그 입에서 다른 무슨 소리가 나오든 그는 이미 조선과 조선인은 가망없다는 자신의 믿음을 선언한 것이다. 우리가 왜 이런 자에게 국가 기밀을 보여주고, 국가 정책을 논하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왜 이런 자가 한국 교육을 좌지우지하고 한국의 외교와 경제정책을 건드리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왜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되집어야 하는가? 우리가 왜 일본의 언론이 한국의 정치가가 조선과 조선인은 본래 가망없는 나라, 가망없는 사람들이었다고 보도하는 사실을 들어야 하는가?

 

믿음과 사실을 혼동하고 때로 사실이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공동체를 말할 때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제 아무리 아내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남자이며 공평하게 행동한다고 주장하는 남자라도 그 남자의 입에서 사실 아내는 한점의 가치도 없는 가망없는 인간인데 내가 양보하고 살고 있다라고 말한다면 그 남자가 생각하는 공평은 전혀 공평하지 않을 것이다. 도둑이나 강도나 강간범이 너는 나처럼 마음씨 좋은 사람 만나서 다행인줄 알라고 말하는 꼴이 된다. 그게 바로 식민지근대화론을 펼치는 일본인들의 태도가 아닌가? 정진석을 보면서 그리고 그런 언행을 용납하는 국민의 힘을 보면서 나는 저런 범죄자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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