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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자본주의와 노동 그리고 자기찾기

자본주의 그리고 가치와 위험의 객관화.

by 격암(강국진) 2022. 12. 19.

22.12.19

천원짜리 가격표가 붙어 있는 빵은 돈으로 치면 누구에게나 천원의 가치를 가진다. 하지만 물론 배고픔과 빵을 좋아하는 정도에 따라 그것이 가지는 실질적인 가치는 서로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빵이 돈으로 쳐서 객관적인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을 우리는 당연시 한다. 그것이 공평하다고 믿는다. 이 빵과 저 빵의 가치는 같아야 한다. 아마도 우리는 그것을 똑같은 빵을 만드는데 들어간 재료와 노동력이 같다는 사실로 정당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오늘날에는 돈이 돈을 버는 일이 많다. 그리고 여기서 1억을 빌린 이자가 천만원이라면 10억을 빌린 이자는 1억이 된다. 1억어치 주식을 산 사람의 돈이 10억이 되었다면 10억치 주식을 산 사람의 돈은 100억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자나 투자 소득이 왜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형태로 돌아오는지를 생각해 보자. 우리가 이자나 투자 이익을 얻는 이유는 그것이 위험해서 라거나 기회비용을 치뤄야 하기 때문이다. 즉 돈을 빌려주거나 투자했을 때 우리는 그 돈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그 위험이 클 수록 돌아오는 소득도 크다. 또한 그 돈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했을 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많다면 우리는 더 많은 소득을 돌려 받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위험하다는 것은 누구에게 위험하다는 것일까? 소득이 위험이나 기회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 때 우리는 그 위험과 소득의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몇조의 재산을 가진 재벌이 1억을 투자할 때 느끼는 개인적인 위험과 나같은 보통 서민이 그렇게 느끼는 개인적인 위험은 당연히 같지 않다. 그런데 돌려주는 보상 즉 이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히 돈에 비례한다. 우리는 은연중에 돈을 사람처럼 취급한다. 돈 스스로가 위험을 느끼고 기회를 상실하게 되는 것처럼 사고한다. 

빵값이 그렇듯이 부자나 가난뱅이가 비행기를 탈 때 비행기표값은 모두 1인당 얼마다. 몸무게가 두 배가 나간다고 해도 표값이 같을 뿐만 아니라 가진 재산이 만배가 차이가 난다고 해도 비행기 표값은 같다. 그런데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득은 가진 재산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노동 소득이 아니라 자본 소득을 따질 때에는 재산이 만배 많은 사람은 마치 만사람인 것처럼 취급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자는 비행표값이나 주거비도 만배를 내야 하는 거 아닐까?

물론 그래서 보통 부자가 세금을 훨씬 많이 낸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은 많다. 그들은 마치 자신이 남들보다 만배의 소득을 올린 것이 노동을 만배를 해서 그렇게 된 것처럼 화를 낸다. 물론 그렇다. 사람마다 빵의 가치가 다르듯 노동을 하고 노력을 한 양도 다를 것이다. 하지만 노동의 양이 그렇게나 다를까? 우리가 지금 모두 밭에서 노동해서 돈을 버는 사회에 있는가? 엄청난 소득의 차이는 종종 돈이 돈을 버는 원리에 따라 발생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도 그것을 가능케 하는 사회 시스템에 의해서 가능해 지는 것이다. 물론 그 시스템은 그 사람이 만든 것이 대개 아니다. 

사람들이 현실을 정당화하는 한가지 방식은 이것이 계약이고 게임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즉 내가 위에서 지적한대로 가치와 위험의 의미를 따지기 시작하면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애초에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런 상태에서 계약을 하고 게임을 진행했기 때문에 법을 지켜야 하고, 게임의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결국 어느 정도일 뿐이다. 프로 게이머나 프로 야구 선수들이 많은 돈을 버는 것을 보라. 그들은 100년전에는 노동으로 여길 수 없는 일을 하고 엄청난 돈을 번다. 자본주의 게임의 법칙 혹은 사회의 현실은 이렇게 계속 변해왔다. 수요와 공급의 경쟁이 적절한 가격을 만든다라는 주장이 평형점에 이르는 시간이 존재하다는 것을 가정하고 그것이 언제나 옳지 않듯이 자본주의의 현실은 계속 변해왔는데 뭐가 게임의 법칙이라는 것인가. 우리가 사는 현실을 체스나 보드게임처럼 변하지 않는 규칙이 이미 있는 상태에서 하는 게임으로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현실적으로는 게임의 법칙이라는 걸 다 배우기도 전에 그 게임의 법칙이 변할 정도다. 

사람들의 주장은 모순되어 있다. 아파트 투자를 해서 가격이 두 배가 되면 그렇게 벌어들인 돈은 내 선택과 노동의 결과이니 내 것이지만 아파트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지면 남탓을 하고 정부탓을 한다. 그러면 사회가 개입하지 않는 자본주의가 옳은 것일까? 앞에서도 말했듯이 애초에 사람이 아니라 돈이 주체가 되어 움직이는 자본주의는 당연한 것이기는 한가? 그게 공평한 것은 왜 당연한가? 사회가 선택하지 않고, 사회가 개입하지 않는 자본주의라는게 있기는 한가? 

 그렇다면 어떤 자본주의가 옳은가라는 질문은 자연스럽다. 나는 그에 대해 내 개인적인 선택을 말할 수도 있을 것이고 사실 그렇게 하고 있다. 내 블로그를 채우는 글들이 그런 예들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 말하는 것은 뭐가 옳은가가 아니라 세상은 우리의 선택대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당연한 건 없다. 지금의 세상도 무조건 나쁜 것 만은 아니다. 다만 당연하지는 않을 뿐이다. 천원짜리 빵을 사면서 이건 당연히 천원이라고 생각하는 버릇부터 우리는 고쳐야 한다. 요즘 세상은 기회가 되었건 모순이 되었건 커지는 세상이기 때문에 이건 당연한거라고 너무 굳게 믿으면 기회건 모순에서건 우리는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게임의 법칙이라는게 있다면 요즘 세상에서는 그건 지금 이순간에도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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