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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이해하기

문해력, 문화전쟁 그리고 지능

by 격암(강국진) 2023. 11. 29.

월터 옹이 쓴 구술문화와 문자문화가 말해주고 있듯이 문자를 쓰고 이해하는 능력인 문해력이란 한마디로 인간의 지능 그 자체의 몸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우리는 가진 생각을 문자로 단지 기록하는게 아니라 문자를 쓰게 됨으로써 대부분의 생각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문자없는 구술문화는 철학적이지 않고 논리적이지 않고 정교하지 못하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로마숫자를 아랍숫자로 표기를 바꾸는 정도만 가지고도 세계의 역사가 바뀌었다고 할 정도로 언어활동, 문자활동은 문명 그 자체의 미래를 바꾼다. 

이렇게 문자가 중요하고, 나아가 그런 문자의 사용으로 완성되는 언어의 일관성과 효율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20세기 이래 세상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전자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멀티미디어 매체가 흔해지고, 문화적 영향력이 전세계로 퍼지기 훨씬 더 쉬워진 것이다. 본래 교육이란 곧 읽고 쓰기를 배우는 것이었고 배운 사람들의 오락도 상당부분이 독서였는데 이런 시대가 끝나고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비디오나 영화에 쓰게 되었다. 문자 매체도 책같이 긴 컨텐츠를 읽는 일은 줄어들고 점점 짧은 글을 읽는 시대가 되었다. 대면접촉은 줄어들고 온라인 접촉은 늘었는데 그러보니 소통도 말로 하는게 아니라 이모티콘이나 사진, 동영상으로 하는 일이 많아졌다. 심지어 교실에서 필기하는 일도 사라져가는 시대다 전자 문서를 받기 때문이다. 

 

언어와 문자가 생각의 표현도구가 아니라 생각 자체, 지능 자체의 몸통이라면 이러한 변화는 지능 그 자체에 문제를 남길 것이다. 우리는 생각하기 때문에 쓰고 읽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쓰고 읽고 말하기 때문에 생각이 만들어 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부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동영상도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듯도 하며 생각을 전파하고, 생각을 촉발하는데 있어서 전혀 효과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동영상과 문자는 다르다. 문자는 사고를 기록하고 고치면서 개념을 형성하게 만들어 주지만 이미지를 통해서 만들어진 개념과 생각이 분명하게 기억되고 전달되기를 상상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문자와 언어 없이 멀티미디어만으로 사고가 발달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많이 아는 듯하지만 그저 흐릿한 이미지만 가득한 바보가 될 뿐이다. 사고의 체계가 부실한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문해력은 떨어지고 있다. 여행을 기행문으로만 기록할 수 있던 것은 매우 불편한 것이었지만 글을 쓸 이유를 만든다. 이런 의미에서 사진으로 찍어 여행을 인스타그램에 기록할 수 있는 기술적 발전은 한편으로는 사고의 퇴행을 가져오게 만든다. 해리포터를 글로만 읽어야 하는 사람과 그걸 영화로만 즐기는 사람도 결과적으로 비슷한 장단점을 가지게 된다. 

 

이런 가운데 시대의 변화와 앞에서 거론한 문화적 영향력은 점점 더 상황을 전쟁같은 재난에 가까운 것으로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의 아파트 이름을 알기 어려운 외래어로 바꾸는 붐이 있었다. 뜻도 모르고 외우기도 어려운 수십자의 이름으로 포레니 센트럴이니 하는 스페인어, 영어, 독일어 등등을 더덕더덕 붙여서 아파트 이름을 바꾼 것이다. 또 오마카세같이 외래어를 쓰는 것도 모자라 그걸 명백히 잘못쓰는 일이 벌어지는데도 그걸 막을 수가 없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라. 우리가 일본에 갔더니 일본아파트의 이름이 한글발음으로 되어서 수십자나 되고, 분식이라는 말이 아주 고급 코스 요리의 이름으로 통하고 있으면 그게 한국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까? 오마카세란 그저 추천요리라는 뜻일 뿐으로 결코 고급 코스 요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일본여행도 흔해진 요즘 그걸 아는 사람도 엄청 많은데도 한우 오마카세니 뭐니 하면서 오마카세가 10만원 20만원짜리 고급 요리가 되어 버린 현실을 보고 입맛이 쓰지 않을 수 없다. 외래어 아파트 이름과 더불어 이런 외래어 오용은 사회적 집단지능의 하향평준화처럼 보인다. 

 

현대의 미디어환경때문에 세상에는 문화 전쟁, 언어 전쟁이라고 할만한 것이 벌어지고 있다. 문화적 영향력이 전세계적으로 뻣어나가기 쉬운 지금 각각의 나라들은 다른 나라의 문화 특히 언어를 파괴하는 영향을 미치게 된다. 먼저 말해두지만 나는 외국어를 배우거나 외국 문화를 즐기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문화수출을 제국주의적으로 보는 것에 동의하지도 않는다. 영어나 일어를 쓴다고 매국노가 되는 것은 아니고 팝송이냐 샹숑을 듣는다고 해도 그렇다. 외국어를 아는 일은 좋은 일이며 외국 문화를 즐기고 경험하는 것은 추천할 만한 일이다. 우리는 자기를 알기 위해서라도 그런 걸 꼭 해야 한다. 

 

문제는 자기도 알고 자기도 지켜야 하며 서로 다른 것 사이의 구분도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적 영향력들이 공존하는 가운데 마치 된장찌개와 퐁듀를 뒤섞어서 파괴하는 것같은 문화파괴, 언어파괴가 일어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남용은 두 개의 문화, 두 개의 언어를 모두 아는 이득을 파괴하고 그것을 하나만 아는 것보다 못하게 만든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란 한국어를 할 때 영어를 섞어 쓰는 사람이 아니다. 영어도 하면서 한국은 제대로 하는 사람이 영어를 잘하는 한국인이다. 각각의 문화와 언어는 개별적 패러다임같아서 결코 쉽게 혼동해서 마구 써도 좋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혼종은 일어나고 유행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의도하지 않아도 현실이 문화의 전쟁터가 되고 마는 이유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언어, 문화 파괴고 종국에는 지능의 파괴가 되고 만다. 문화 전쟁이란 말은 농담이 아니다. 어떤 의미로 하나의 문화는 타국의 문화를 잡종으로 변하다가 죽게 만들어 그 나라의 집단 지능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게 만든다. 이렇게 되면 문화는 마치 살인 바이러스같은 것이 된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유럽인의 전염병이 죽이듯 하나의 문화가 다른 문화를 가진 나라를 죽일 수도 있다. 여러번 강조했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지능을 전부 가진게 아니다. 우리의 지능이란 상당부분 언어와 문화같은 외부적인 것과 연결되면서 발휘되는 것이다. 쓰지 않고, 읽지 않고, 말하지 않고는 생각도 할 수 없는데 항상 쓰레기 같은 것만 쓰고 읽고 말한다면 지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문화도 언어도 하나의 생명체같아서 그냥 돌처럼 존재하는게 아니라 주변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존을 위해 아둥바둥하며 존재를 지켜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할 때 질서는 무너지고 종국에는 야만의 시대가 올 것이다. 나는 우리의 문화적 생명력을 믿지만 사람들의 문해력이 떨어져 간다는 이야기나 외래어 남용으로 언어가 파괴되어 바보같은 소리가 유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걱정이 된다. 그건 그냥 유행이 아니다. 지능 파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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