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줄을 서면 당연히 집단적으로 말해 가장 효율적으로 일이 이뤄진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건 내가 줄을 서도 다른 사람도 줄을 설 것인가하는 것이다. 내가 줄을 섰는데 다른 사람들은 줄은 안서면 나만 손해볼 것이다. 이같은 문제는 일찌기 죄수의 딜레마라는 문제로도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이 협력하면 두 사람 다 좋은 결과를 얻지만 한 사람이 배신하면 나는 나쁜 결과를 얻는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서로를 믿을 수 없어 서로 배신하게 되기 쉽다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경험이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던 정보를 모으고 그 정보에 기반해서 우리의 판단을 결정하므로 과거에 어떤 경험을 했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판단을 결정할 근거가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종의 학습모델을 상상할 수가 있다. 배신 당하지 않은 사람은 배신 하지 않는 경향을 늘리고 배신 당한 사람은 배신하는 경향을 늘리는 학습을 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일단 배신을 당한 사람은 자신도 배신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배신의 행위는 다른 사람의 배신 경향을 늘리게 하고 다시 이 사람으로 하여금 배신 당하는 경험을 하게 한다. 다시 말해서 배신하는 행위는 자기 확신으로 변해서 결국 모두가 배신하도록 경험을 만든다.
이는 배신하지 않는 경험에 대해서도 똑같이 작동하기 때문에 똑같은 출발점에서 똑같은 게임의 법칙을 가지고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차 그 결과가 양극화된다는 것을 보게 된다. 우연히 행해진 한 번의 배신 행위는 점차로 커져 모두가 배신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고 그 반대로 수많은 배신에도 불구하고 한번 남을 믿어준 행위는 믿음의 증가로 이어져 모두가 서로를 믿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이런걸 생각해 보면 어떤 사상은 그 자체가 옳고 그르다기 보다는 믿음에 달린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사상을 믿는 사람이 많으면 그 사람들은 그 사상이 옳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서 경험하게 된다. 믿음이 믿음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불신은 불신을 증명한다. 그 사상을 믿지 않는 사람이 보면 역시 그 사상이 엉터리라는 체험이 자신의 불신을 정당화한다.
그래서 어떤 비전이나 사상이 있을 때 우리가 그것을 그냥 미신이거나 가짜라고만 생각하는 것이 옳지 않다. 첫째로 그 사상을 모두가 믿고 지지하는 것이 가능한가를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한두 사람이 믿지 않으면 전체 믿음의 공동체가 무너지는 사상이라면 그런 사상은 불안정할 것이다. 일단 믿음의 상태에 도달하면 그건 안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상인가? 좋은 예는 반과학적인 사상이다. 과학을 부정하는 사상이 안정적으로 집단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둘째로 그런 사상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이득을 얻을 수 있는가? 믿음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데 얻는 것도 없다면 그런 사상은 가치가 없을 것이다. 사상은 그 자체가 옳거나 그르기 때문에 믿거나 부정한다기 보다는 우리가 그것을 통해서 어떤 이익을 얻고자 하는 수단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사상이 우리에게 어떤 이득을 줄 것인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별 이득을 얻는 것도 없는데 그런 사상을 지켜야 할 가치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과학적이나 논리적으로 뭔가를 부정하거나 긍정하는 태도를 넘어서 그 사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즉 사상이란 과학적 지식처럼 진리 개념처럼 접근될 어떤 것이 아니며 따라서 지금은 옳고 소중하지만 나중에는 무시하고 버려야 할 어떤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사상을 마치 과학지식처럼 논리적으로 실증적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노력은 어떤 정도를 넘어서면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가 이걸 기억하지 않으면 가능성있는 비전을 비웃거나 지금 자신이 믿는 어떤 사상이나 비전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긴 나머지 거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사상은 옳고 그른게 아니다. 그건 우리가 옳게 만들 수 있고, 이득을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제안이다. 시간이 지나 상황이 달라지면 그걸 그만 쓸 수도 있는 도구다.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어떤 사상이 절대로 틀리다고 믿거나 반대로 옳다고 믿으면 우리는 이 점을 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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