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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마음의 길, 몸의 길

by 격암(강국진) 2025. 5. 7.

세상에는 마음의 길이라고 불러야 할만한 것이 있고 몸의 길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마음의 길을 종교의 길이라고 불러야 할 수도 있으며 사람들은 특히 나이가 들어갈 수록 이 마음의 길을 잊지 말고 집중해야 한다. 나는 특정한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노인은 결국에는 구도인으로 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몸의 길은 사회의 길이며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고, 사람을 사귀고, 직업을 가지고, 뭔가를 사회적으로 성취하는 길이며 뭔가를 물질적으로 소유하고 즐기는 길이다. 사회의 길은 감각의 길이며 정보의 길이다. 그 길은 이 세상에 던져진 우리가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를 경험하는 길이다. 부자가 된다거나 박사가 된다거나 노벨상을 받는다거나 사장이 된다거나 하는 것은 모두 이 사회의 길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몸의 길은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외적인 체험을 준다. 내 손이라고 하더라도 그 손을 보고 그 손으로 물건을 잡아봐야 내 손이 내 손처럼 느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세상에서 여러가지를 해보면서 세상을 경험하고 동시에 나를 경험한다. 나는 이정도의 사람이구나,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고 이런 곳이 있고 이런 것이 있구나를 알게 되는 것이다. 시험을 잘봐서 명문대라도 들어간다면 난 좀 머리가 좋은 사람인거 같아라고 생각하게 되고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면 나는 인기는 별로 없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며 부자라도 되면 나는 돈 모으는데는 소질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경험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이러니 저러니 생각만 하는 것은 별로 재미도 없고 성과도 없다. 연애가 뭔지 출세가 뭔지,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흉한 곳인지, 사람이 얼마나 아름답고 흉한 것인지를 경험해 본 적도 없으면서 세상 다 아는 것처럼 구는 것은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본 적도 없으면서 음식의 맛에 대해서 다 아는 것처럼 구는 아이와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마음의 길은 철학의 길이고 해석의 길이며 이론의 길이다. 경험이란 소중하지만 그 자체가 저절로 어떤 깨달음을 우리에게 주는 일은 드물다. 사회적 지위나 물질적 소유는 우리에게 쾌락을 주지만 그것만으로 우리가 행복이나 보람에 도달할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의 그 경험을 연결하고 일반화해야 한다.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험이란 차차 무의미하고 지루한 것이 된다. 우리가 뭔가를 경험하기 위해서 우리는 뭔가를 알고 뭔가를 가정해야 한다. 경험이 이론을 만들듯이 이론이 경험을 만든다. 그래서 내 안에 좋은 이론, 좋은 철학이 없다면 우리는 경험도 할 수 없다. 부족한 철학이 우리의 해석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의 길과 마음의 길은 같이 걸어야 하는 길이며 적어도 서로 교차되어 반복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즉 몸의 길로 경험이 쌓이면 우리는 그것을 해석할 마음의 길을 걷는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마음의 길을 무시하면 우리는 외적인 조건에 휘둘리기 쉽다. 내가 코가 꿴다고 말하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뭔가를 가진다거나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은 모두 어떤 권리와 의무를 우리에게 동시에 부여한다. 예를 들어 복권당첨으로 돈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도 우리는 그 돈을 관리할 의무가 생긴다. 우리는 대개 돈이 부족하므로 돈을 관리하는 것은 그저 행복한 고민인 듯 하지만 쓸 곳도 모르는 돈을 관리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쓰다가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이게 다 뭐하는 짓일까, 나는 누구 좋으라고 이렇게 돈을 벌고 쌓아놓는 일에 시간을 쓰는 것일까? 돈때문에 내 인생이 사라지고 마는 것은 아닐까? 하루 종일 주식 가격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돈의 힘은 강력하지만 사회적 관계의 힘은 그 이상으로 강력하다. 부모가 되면 부모의 의무가 있다. 직장인은 직장인으로서의 의무가 있다. 친구는 친구로서의 의무가 있다. 우리는 대개 출세하고 그런 자리가 주는 권리를 즐기고 싶어하지만 높은 자리에 가면 갈수록 우리의 의무도 더 많아지는데 만약 그 의무에 걸맞는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면 우리는 자리의 노예가 되거나 악당이 되고 만다.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느라 일분일초가 아쉬울 정로도 바쁘고 정신없이 살거나 아니면 자신의 무능력을 숨기고 변명하기 위해 나쁜 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의무와 위선의 연속속에서 어느날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할지 모른다. 도대체 이게 뭐가 좋아서 나는 이런걸 하고 있는 것일까? 내 인생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세상에는 우리를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 유혹하는 물건들이 가득 하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그것들에 빠져들어 헤어나기 어렵게 될 수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그럴듯하지만 함정과 같은 유혹을 한다. 우리는 마치 코가 꿰어 일하는 소처럼 되고는 죽을 때까지 거기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조심스럽게 살아야 하고 마음의 길을 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의미도 모르는 채 계약을 하는 사람처럼 살게 된다. 소중한 것을 필요도 없는 것과 교환한다. 세상에는 참 어리석어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이미 충분히 가졌으면서 더 가지려고 하다가 악당이 되고 결국 가진 것을 다 잃어 버린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그들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의 길을 걷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음의 길은 이런 의미에서 자유의 길이다. 

 

마음의 길과 몸의 길은 완전히 따로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또 확연히 다른 것이다. 어릴 때나 젊었을 때는 몸의 길을 걷는데 더 집중하는게 합리적이다. 왜냐면 이 세상의 복잡함에 비해서 어린 아이가 가진 체험은 너무나 작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된다. 더 많은 물질적 소유, 더 많은 사회적 관계를 가지게 된다. 무엇보다 이런 저런 많은 체험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가면 우리는 차차 이 마음의 길을 걷는데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할 필요가 있다. 더 많은 데이터속에서 더 미묘한 진리를 찾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하고 있지는 않다. 세상에는 40이 넘고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도 어린 아이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다. 어린 아이같다고는 하지만 그들을 천진난만하고 순진하다고 말할 것이 아니다. 10살 짜리 꼬마가 던지는 돌멩이나 말은 그다지 힘이 없다. 그래서 그들의 행동은 장난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총을 든 꼬마는 너무 위험하다. 그 꼬마의 행동은 장난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면 우리는 대개 여러가지 능력을 가지게 되고 더 많은 것을 가졌기 때문에 더 위험해 진다. 스스로의 삶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도 간단히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 정말 유치한 욕망때문에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을 고통에 빠지게 하는 일도 하는 것이 철들지 못하고 자유롭지 못한 어른이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이미 책임져야 할 것이 많다. 특히 마음의 길을 걷지 않은 사람들은 더 그렇다. 그들은 중요한 것을 따지지 않고 이리저리 일만 벌여 왔기 때문에 이미 자유가 거의 없다. 그래서 항상 바쁘다고 투덜대면서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린 애같이 살면서 이리저리 온갖일에 간섭하기 좋아하는 그들의 삶은 정작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그들은 위태롭다. 언제 중대한 실수를 해서 위기를 불러 올지 모른다. 언제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를 줄 지 모른다. 

 

마음의 길은 대개 덜어내는 길이다. 왜냐면 마음의 길을 걸어보면 온갖 군더더기가 있으면 있을 수록 삶이 엉망이 된다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음의 길은 현대사회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왜냐면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 지고 있으며 아이들은 체험과 지식의 측면에서라면 너무나 일찍부터 많은 것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자기 나름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문제가 생긴다. 더 많은 데이터는 더 많은 분석의 시간을 요구한다. 현대 사회에서 마음의 길이 점점 더 중요해 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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