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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사람을 만나는 일의 가치

by 격암(강국진) 2025. 5. 18.

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진학하거나 취업한 아이들에게는 무엇보다 누굴 만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는 한다. 그렇다면 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사는 사람일까? 그렇지는 않다. 아내는 내가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는다면서 동창들에게라도 연락해서 사람을 만나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나는 사람만나는 일을 그리 즐기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아예 뚜렷한 목적을 가지거나 아니면 전혀 목적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뚜렷한 목적을 가지는 경우에는 내가 그 사람과 만나서 해야할 일이 분명하다. 협력을 하건 협상을 하건 우리는 그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건 동업과 비슷한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만나는 사람을 우리는 동업자나 동료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아무 목적이 없는 경우는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만날까? 도반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불교의 용어로 함께 불도를 배우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나는 이 말을 좋아하고 불교를 넘어 함께 수도를 하는 친구로 해석한다. 나는 목적이 없는 만남이란 도반의 만남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이 경우 그 사람과 나의 공통점은 둘 다 인생을 살고 있고 더 잘 살고 싶다는 것이다. 각자는 서로 다른 인생을 살기 때문에 서로 대화를 하면 각자의 경험을 나눌 수가 있고 그것이 나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목적이 없는 만남이란 그래서 그냥 잡담을 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재미있는 것을 아무 주제와 목적없이 떠드는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만남이 힘이 되고 도움이 된다.

 

목적이 없는 만남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을 우리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뭘 어떻게 서로를 돕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나고 배우고 모범이 될 수 있고 자극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게다가 도반이라고 말한 것에서 잘 드러나겠지만 목적이 없는 만남에는 목적이 있다. 그건 인생철학을 완성하고 자기 삶을 보다 더 합리적으로 살아보겠다는 목적이다. 진정으로 아무 목적도 없다면 만남은 의미가 없을 것이고 따라서 즐거움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의 만남에는 어설픈 목적이 끼어든다는 것이다. 어설픈 목적의 만남이란 또렷히 나의 목적을 들어내지 않고 그냥 인맥을 만들어 두었다가 어떻게 이득을 볼까 하는 것으로 이런 만남은 겉으로 아무리 화기애애해도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이용해서 이득을 보려는 것이기 때문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

 

말하자면 본래 만원에 파는 물건을 내가 그 사람과 인사 좀 했다고 해서 5천원에 받을수 없을까 생각하는 것이고, 경찰과 인사를 하면 내가 불법을 저질러도 봐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며, 선생과 인사를 하면 다른 아이보다 내 아이를 잘 봐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런 어설픈 목적의 만남을 가짜만남이라고 불러보자. 가짜만남은 오해를 불러 온다. 왜냐면 표면적으로 가짜만남은 목적이 없는 만남을 가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적이 없는 만남의 전제조건인 철학적인 고민이 이들에게는 없다. 차라리 또렷히 목적을 들어내고 나에게 내가 할수 있는 것을 요청하며 나와 협상을 한다면 그것은 서로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일일텐데 그것도 아니고 아무 목적도 없는 척하면서 어떻게 이득을 누릴 수 있을까를 엿보는 것이 이런 가짜만남이다. 이런 만남으로 만나는 사람은 친구도 아니고 동료도 아니다.

 

그들에게는 철학적인 고민이 없기 때문에 그들과의 대화는 겉돈다.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하는게 아니라 마음속에 이미 답을 가지고서 대화에는 집중하질 않는다. 이건 마치 아무 용건이 없다고 말하지만 실은 돈을 빌리러 온 사람이 그 생각만 하면서 다른 대화를 하는 것과 같다. 철학적인 고민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반드시 현학적이고 학문적인 대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아니다. 정말 다른 욕심이 없이 그저 세상과 사람에게 흥미가 있는 사람과의 대화가 철학적 대화다. 왜냐면 그럴 때 우리는 자연히 우리 고민의 중심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걱정이 있다. 돈 욕심이 있고 연구를 잘하고 싶거나 일을 잘하고 싶고 아이를 잘 키우고 싶으며 부부관계에 대한 고민도 있다. 욕심이 없는 대화란 내가 문제가 없고 원하는 것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직접적으로 해결을 요청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니까 재태크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욕심이 있는게 아니다. 다만 말을 대충 들으면서 결국 당신이 나에게 돈을 벌어주시오같은 태도가 되면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내 문제를 뒤집어 씌우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만남에는 이해에 대한 노력이 없다. 그들은 사실 이미 어떻게 자신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지를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건 누가 나대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자와 친구가 되었는데 내 재정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어야 할 것인가라고 하면 그냥 부자가 나에게 돈을 줬으면 한다. 그 부자친구가 돈이란 무엇이며 투자란 어떻게 해야한다고 말하면 그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그 마음속이 이미 답으로 가득 찬 사람을 만나면 대화가 되질 않는다. 왜냐면 그 사람은 이미 뭘 해야 되는지를 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잔뜩 모이면 그 만남은 위선과 허구로 가득 찬다. 겉으로는 서로를 매우 위하는 척 하지만 결국 서로 서로 사기치려는 사람들이 사기꾼 게임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대화내용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솔직하지도 않으니 다 시간낭비에 불과하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것은 이래서 그렇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일에는 인연이 필요하다. 그리고 진짜 친구는 얻기가 매우 힘들다. 성실한 동료를 가졌다면 그 정도로 우리는 만족해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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