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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하다.

by 격암(강국진) 2026. 6. 24.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환경을 빼놓고 나를 논할 수 없다는 것은 나의 기본적 믿음이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하다는 것도 맞다. 그 이유는 인간은 서로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가끔 있는 기적같은 일시적 현상이거나 실은 한 쪽의 생각이 뭔가의 이유에 의해서 다른 한쪽에 강요되고 있는데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먼저 말해둘 것은 사람이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서로 생각이 다를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어떤 의미로 달라야만 한다. 같게 만들려는 힘은 부자연스럽다. 사람이 서로 생각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의 유한성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세상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기억하며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못된다. 그저 작은 경험과 기억력에 근거한 인식의 창을 통해 세상을 볼 뿐이다. 재벌 3세가 자기힘으로 성공한 것처럼 말하는 것을 비판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런 사람도 전세계적 규모로 보면 분명히 안정된 한국에서 태어난 덕분에 그정도 사는 것이며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운 후진국 국민입장에서 보면 재벌3세로 태어난 거나 마찬가지인데도 자신은 자기힘으로만 성공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나마 조금 더 넓고 크고 자세히 보려고 하는 노력이 응축된 것이 철학이다. 그리고 여기서도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느끼고 그 한계는 사람들마다 다르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철학의 폭도 깊이도 사람들마다 다르다. 어떤 마을의 노인들이 막걸리 사주고 고스톱쳐주면 선거에서 표를 주는 걸 보고 저건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한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옳은 이야기다. 하지만 민주주의도 결국 인간이 만든 틀이다. 그 틀 안에 모두가 들어갈 수 있고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자신의 시야가 좁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다. 그런 사람이 권력을 가지면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정리하고 그 안에서 불행한 사람들은 불행해도 당연하다고 말하기 쉽다. 시골노인의 유한함은 잘 보면서 자신의 유한함은 보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장 뛰어난 운동선수도 정치와 학문의 세계에서는 멍청이일 수 있다. 누가 누구에게 잘난 척할 일이 아니다. 이러니 어떤 개인이 만든 틀로 모든 인간이 행복해 지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는 것이 사회이니만큼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 반드시 고독은 아니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위험을 부른다. 그때문에 인간은 외로워진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주는 것은 유명 연예인들의 가족이 이따금 그 유명 연예인들을 얼마나 망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가족 중의 하나가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성공을 한 것인데 문제는 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것이다. 종종 그 연예인의 부모나 오빠나 형은 서로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하고 아예 그 연예인의 성공은 내 것이라고 여기는 나머지 그 연예인을 불행하게 만든다. 돈을 착취하고, 그 연예인을 가족이 지배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고립시킨다. 내가 흔히 하는 말로 당첨된 복권을 스스로 찢어버린다. 종종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 가족이다.

 

나는 큰 아들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종종 본다. 그들은 딸이나 둘째, 세째의 불행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도 보면 다 좋은 분들이다. 다만 생각이 다를 뿐이다. 좋은 분들인데도 큰 아들의 사소한 편의를 위해 전혀 망설임없이 자신의 다른 아이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 그 아이도 사랑한다면서 말이다. 생각이 다르다. 아는 것이 다르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 지도 다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아마 자기 아들의 취직을 위해서라면 인류멸망의 스위치도 서슴없이 누를 것이다. 근본적으로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 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건 다 극단적인 사례라고 할 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 인간의 삶의 희극과 비극은 다 이런 것에서 온다. 우리는 남의 발을 밟고서 자신이 발을 밟은 줄도 모른다. 그러다가 남에게 어깨라도 부딪히면 매우 아파한다.

 

그런 현실을 단순하게 편한대로 해석하는 것도 유한한 인간이 가지는 하나의 관점이고 그 관점에 따르면 세상은 단순해서 함께 사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 나는 그런 관점을 존중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각별하게 멀리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닐지 몰라도 그건 좁은 그 사람의 세계 안에서만이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의 세계라던가, 폭력적인 세계를 우리는 외부인의 눈으로 볼 수 있다. 혹은 기억을 더듬을 수도 있다. 우리는 누구나 한때는 어린이 였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해보면 우리는 그 세계에서 일어나는 희노애락이 대부분 시야가 좁아서 생기는 일이라는 점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까 좁은 방에 고슴도치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불을 끄고 들어가 있는거나 마찬가지다. 서로 찌르고 찔린다. 아이돌의 이름을 모른다던가, 그저 기분나쁘게 쳐다봤다던가 하는 이유로 즉 아무 이유없이 극단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 예의 핵심은 그들은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멀쩡하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왜 가슴아파하고 사는게 힘든지를 모르고 자신이 사는 세계를 그저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외부인의 눈으로 보면 그 안에 있으면 바람잘날이 없고 어느 날은 매우 친근한 것처럼 굴다가 다음 날은 원수처럼 구는 일이 내가 뭘하든 이유없이 일어난다는 것이 보인다. 그런데 내부인의 눈으로 보면 그 세계는 이미 완전하고, 그저 내가 잘 처신하면 잘 살 수 있는 세상이다. 누군가가 잘 사는 것도 고통스러운 것도 그 사람의 탓이다. 물론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일어나지만 살면서 그런 일은 참아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어린이와 폭력배는 그 세계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로 그 세계를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유한하고 그래서 각자의 가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고독한 것이다. 다른 인간들이 나쁘고 사악해서가 아니다. 선악의 개념은 사실 어떤 틀을 전제한 후에 오는 것이다. 살다가 보면 불에 데이고 미친 개에 물릴 때가 있다. 그 불에 손을 다시 집어넣고 미친 개의 입에 손을 다시 넣는다면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용서와 화해의 개념으로 파악하면 그런 일이 일어난다. 우리가 고독해지는 것은 상대방을 미워하거나 나쁘게 만들려고 해서가 아니다. 인간의 유한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칼날을 잡으면 손이 베인다. 칼날이 나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그게 칼날의 본성이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고독하다는 말은 반드시 우리가 세상을 등져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적절한 거리감각을 익힐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앞에서 든 어린이나 폭력배의 세상의 예를 잊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그런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상식적이고 깨어있는 사람들의 세상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성공은 정당한 사람에게 주어지고 고통도 그렇다고 생각하며 가끔은 이유없이 불행이 닥치기도 하지만 그건 그저 참고 살아야 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그 유한한 세계를 다시 외부인의 눈으로 보게 되는 날이 온다면 우리는 느낄 것이다. 그 세계에서 뭘하는 것 이상으로 그 세계에 있다는 것이 모든 것의 이유였다. 그것이 나를 코가 꿰인 소처럼 일하게 만들고 고통받게 만들었다. 우리의 유년기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저 확장될 뿐이다. 우리는 언제나 유한한 존재로 남을 것이다. 어린애와 어른이 같은 물리적 공간에 있다고 해도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듯 우리는 사실 모두 다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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