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들54

철학을 위한 여행 6 : 부모를 미워하는 죄 6. 부모를 미워하는 죄 남자들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지 않으면 이야기를 못하는 것 같아요. 수영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마시던 커피 컵속에서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나는 몇번이나 그녀의 몸매를 훓어보았을까? ********************************* 내가 수영의 이력에 대해, 수영의 어린 시절에 대해 어떻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는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틀림없다. 사실 그녀와 나의 대화는 어떤 의미에서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식에 가까웠다. 즉 진정한 의미에서 대화가 아니라 독백에 가까웠다. 내가 요즘엔 비가 자주와요라고 하면 그녀가 나는 비오는 것이 좋아요하는 식의 대화가 아니라 그녀가 느닷없이 부모님은 .. 2009. 10. 5.
철학을 위한 여행 5 : 눈먼 로맨스 5. 눈먼 로맨스 수영은 내 이야기를 매우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오히려 말하는 내 쪽에서 내 말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던가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정도다. 수영을 처음 봤을 때부터 어렴풋이 느껴지던 질문이 떠올랐다. 운명적인 만남이라던가 인연이라던가 하는 것이 있을까. 그녀와 나는 인연이 있어서 만난 것이고 앞으로 그녀는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 될까. 그녀는 왜 내앞 에 나타났는가. ********************************************** 대개의 고등학생이 다 그렇기는 했지만 내게 있어서 대학입시 준비는 정말로 지긋지긋한 것이었다. 나는 아침부터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공부를 했다. 참고서를 읽고 문제집을 풀고 영어단어를 외웠다. 티브이도 라디오도 보거나 듣지 않았고 일체의 즐거.. 2009. 10. 5.
철학을 위한 여행 4 : 문명이란 무엇인가. 4. 문명이란 무엇인가. 그러니까. 엔진이 왜 중요한가 하는 거죠. 자동차에서.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믿을 수 없게도. ***************************************************************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만큼 세상을 본다. 본래도 수학과 물리학을 좋아했지만 물리학과에서 학부, 석사,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복잡한 수학계산을 하는 훈련을 받았다. 아주 길고 복잡한 계산을 손으로 해본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이 느낄수 있는 쾌감, 그 사람만이 느끼는 느낌이 있다. 내가 했던 계산중에는 소위 레플리카 계산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었다.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계산일리야 없지만 이론 계산을 하는 사람들중에서도 당시에는 아주 지저분하고 고된 일이라고 .. 2009. 8. 18.
철학을 위한 여행 3 : 잘못된 교육 3. 잘못된 교육 축제가 끝나던 어느날 나는 불꺼진 운동장에 들어누워 하늘의 별을 보고 있었다. 나는 내가 나라는게 싫었다. 뭔가 다른 사람 더 훌룡한 사람이 되었으면 했다. 박사를 받으면 그렇게 되는 걸까, 교수가 된다면 그렇게 되는 걸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딘지 모르게 이미 뭔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 * * *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날, 나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것은 고된 입시생활에 대한 보상이고 성취였으며 대학은 나의 왠지 모를 답답증을 날려버릴 구원의 장소라고 여겨졌다. 나는 물리학을 전공했다. 그것은 물리학이 세상의 모든 것을 몇 개의 간단한 원리에서 설명해 내는 학문이기때문이었다. 세상에는 몇 개의 힘밖에는 없다. 약력, 강력, 중력, 전자기력밖에는 없다.. 2009. 8. 18.
철학을 위한 여행 2 : 복잡한 세상 2. 복잡한 세상. 수영이 준 귤은 달았다. 귤은 맛있고 수영은 아름답다. 우리는 기차위에 있고 만날 사람도 할 일도 없다. 삶이 이렇게 단순한 거라면 오죽 좋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른다. ************************************************************* 한동안은 단조로운 열차의 덜컹거리는 소음만 들려오고 있었다. 단조로움이 축복처럼 느껴질 때가 있고 이렇게 열차안에서 속박되어 있을 때가 가장 자유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뭔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에서, 뭔가를 걱정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나는 스스로가 이해와 걱정의 중독에 빠져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 생각이 없고 풀 수 있다는 희망이 없을 때.. 2009. 8. 18.
철학을 위한 여행 1 : 거리로 나서다. 1. 거리로 나서다. 나는 거리로 다시 나서야 했다. 나는 절박했다. ************************************************************** 사방은 벌써 어두웠다. 하루치의 밝음은 이미 다 소진되어 버린 참이었다. 경주 역앞의 사람들은 쌀쌀한 날씨 탓인지 아니면 그곳이 역앞이란 이유때문인지 뭔가에 쫒기듯 빨리 빨리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기차역이란 장소는 본래 이방인이 이고장으로 들어오는 곳이거나 어디론가 떠나기위해 가는 장소다. 누구도 역앞에서 느긋하게 오래 서있지는 않는다. 대개의 사람들은 모두들 각자의 목적지 –아마도 각자의 가정이겠지만- 를 향해 허둥지둥 움직이는 것이다. 집으로 가져갈 황남빵 박스를 들고 가거나 과일봉지를 들고 가는 사람들도 보였다.. 2009.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