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812 제주 한달살기 7: 조난의 경험과 함덕의 감동 19번 올레길은 본래 제주항일 기념관에서 시작해서 김녕항까지 이어지는 19.4km나 되는 긴 길이다. 하지만 우리는 동복포구를 잠깐 들린 후 북촌포구에서 함덕해수욕장까지만 역방향으로 올레길을 걸었다. 오늘은 짧은 거리지만 뜻하지 않은 이벤트 덕분에 원하지 않는 스릴과 감동을 맛본 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일단 먼저 점심을 먹기 위해 우리는 함덕해수욕장에서 멀지 않은 선이네밥집에 들렸다. 착한가격업소이기도 한 가게에 들어서니 친근하게 말을 걸어주시는 할머니가 다른거 먹지 말고 정식을 먹으라고 권해주신다. 세련된 가게는 아니지만 분명 싸고 푸짐한 집이기는 하다. 만원짜리 정식이 상을 가득 채운다. 이 집은 벽 가득히 방문한 사람들이 쓴 포스트잇 메모가 걸려있다. 유명할만한 곳이며 제주 식사는 비싸다는 생각을.. 2025. 10. 22. 인간의 조건 인간은 어떤 조건 속에서 태어나고 살게 되어 있는가? 이같은 질문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고 당연해 보이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종종 잊혀지고 있는 질문이다. 우리는 대개 우리는 뭐든지 될 수 있다는 낙관론을 펴거나 우리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는 숙명론에 빠진 나머지 인간의 삶이 가진 조건을 질문하지 않는다. 인간의 조건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조건이란 너무 다양하고 많아서 뭘 이야기할 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 중에는 잊어서는 안되지만 종종 잊혀지는 세가지가 있다. 그것은 유한성, 특수성 그리고 의존성이다. 유한성이란 인간이란 유한한 존재라는 걸 의미한다. 우리 인간은 모두 유한하다. 알 수 있는 것도 느끼는 것도 기억하는 것도 이해하는 것도 .. 2025. 10. 22. 제주 한달살기 6: 쇠소깍과 소라의 성 6번 올레길은 올레길 쇠소깍에서 시작해서 서귀포시까지 이어지는 10km 정도의 길이다. 지도상으로는 시내에 들어가기 전까지 내내 바닷길이지만 중간에는 나무로 터널처럼 되어 있는 꽤 긴 구간이 있어서 바닷길도 있다가 숲길도 있는 그런 산책길이라고 할 수 있다. 쇠소깍이라는 어색한 이름에서 쇠는 소를 의미하고 소는 웅덩이, 연못을 의미하며 깍은 작은 끝트머리같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쇠소깍은 미니어처 그랜드캐년처럼 생겼다. 돌이 많은 제주지만 그 안에서도 나름 신기한 구조인데 돌이 깊게 물길로 파여서 흐르는 길을 만들었다. 그 길은 결국 바다와 만나는데 쇠소깍의 입구부분에 해당하는 곳은 물이 거의 없었지만 바다와 만나는 쪽에 가면 바닷물이 들어와 깊은 물이 채워져 있는 작은 협곡이 된다. 물론 이 모든 것.. 2025. 10. 21. 제주 한달살기 5 : 제주의 독립서점 여행은 전적으로 아름다운 경치에 대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데 그래서 나는 여행에 도서관을 끼우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지역에 가면 맛집도 가고 경치가 좋다는 곳도 가지만 그리고 나면 도서관에 가서 여행기도 쓰고 책도 좀 읽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다. 하나는 몸을 위한 여행이라면 또 하나는 내 정신을 위한 것인데 그 둘이 균형을 잡을 때 여행을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다. 맛집도 멋진 경치도 사실 그것만 계속되면 금새 지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집에서 가까운 2개의 독립서점들인 애월책방 이다와 보배책방을 방문해 보았다. 교보나 영풍같은 큰 서점이 아니고 주로 참고서 파는 서점도 아닌 서점들에 내가 가 본 지는 오래 되었다. 인터넷에서 책을 파는 시대에 서점의 비지니스 모델은 거의 완전히.. 2025. 10. 20. 제주 한달살기 4: 동문시장과 성산일출봉 비가 오기도 해서 우리는 카페에서 시간을 좀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검색으로 찾아간 제주바솔트라는 카페는 여러가지로 나의 상상과는 달랐다. 비싼 카페에 돈을 지불하는 이유는 커피 이상으로 장소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인데 이 카페는 재래시장에 있었고 자리도 불편한 카페였다. 내부 인테리어만 화려하게 해서 사진으로만 보면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 카페에서 보내는 오후라는 일정은 변경되었다. 우리는 그대신 김밥을 사먹고 제주 동문시장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제주동문시장 공영주차장에 세운 우리는 차안에서 사가지고 온 김밥을 먹었다. 그리고 동문시장을 돌아다녔다. 소금빵 아이스크림이 맛이 좋았고 사지는 않았으나 황금향이라는 귤이 맛이 좋았다. 하지만 왠지 동문시장의 분위기는 내가 기억하는 과거보.. 2025. 10. 19. 제주 한달살기 3 : 제주의 하늘 오늘은 제주 14번 올레길의 바닷길 부분을 걸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길을 걷고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던 패턴을 바꿔서 오늘은 아침을 느긋하게 보내고 오후에 길을 걸었다. 몇일간 걸었던 결과로 타들어 가며 통증을 주던 피부를 생각해서 다이소에 들려서 얼굴 가리개도 샀다. 집근처에 있는 만두전골집인 장인의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는 딱새우란 걸 처음먹어 보는데 딱새우가 국물이나 내는 거지 먹기에는 별로 먹을게 없는 새우였다. 하지만 만두전골은 전반적으로 맛있었다. 그만큼 가격도 하는 식사였지만. 점심 식사 후 202번 버스를 타고 한국통신 앞에서 내리니 제주 한림항이다. 여기가 제주 15번 올레길이 14번 올레길과 만나는 곳으로 14번 올레길의 바다길 부분은 한림항에서 부터 협재, 금.. 2025. 10. 17. 규칙의 불안정성과 현실의 변화 현실은 수많은 규칙들로 이뤄져 있다. 그 규칙은 법률의 형태로 고정될 때도 있지만 문화적 규칙처럼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경우가 더 많고,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규칙도 있지만 애매해서 사람들마다 다른 경우도 많다. 규칙이란게 이렇게 절대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규칙이 없으면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범죄자는 법률적 금기를 어긴 사람이고, 패륜아는 문화적 금기를 어긴 사람이다. 불량품은 정상제품을 판단하는 규칙을 어긴 물건을 의미하며 배신자는 친구나 동업자의 규칙을 어긴 사람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모든 이름은 어떤 규칙의 체계를 의미하고 우리는 그에 따라 어떤 것이 그것이라고 말하거나 그것이 아니라고 말한다.그러므로 어떤 고정된 현실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어떤 고정된 체계의 규칙들이 존재하며 그것들이 변.. 2025. 10. 16. 제주 한달살기 2 : 현무암과 걷기의 방식 오늘은 우리 집앞의 고내포구에서 구엄포구까지 걸었다. 이 길은 제주도 16번 올레길의 전반부로 약 5km쯤 되는 길이다. 우리는 구엄포구를 지나서 약간 더 바닷가 쪽으로 걷기는 했지만 바닷가를 떠나 오름쪽으로 가는 16번 올레 길의 후반부를 걷지는 않았다. 제주 사람에게는 오름이 좋아보일지 모르지만 바다는 드물고 산은 더 많은 육지사람에게는 아직은 오름의 경치보다는 바다의 경치가 더 신기하다. 해안 어디에나 있는 검은 돌들도 아직은 모두 신기하게 보인다. 이 돌들이 생겨난 것은 10만년 100만년전이라는데 여전히 꺼칠꺼칠한 모습인 것은 생각해 보면 신기했다. 10만년의 파도와 비도 그것들을 둥글게 만들지 못했다. 고내포구는 올레길 16번의 시작점이다. 재즈 공연을 한다는 바 마일즈가 있는 곳이기도 한.. 2025. 10. 16. 제주도 한달 살기 1 : 김밥과 바다 제주의 애월읍에서 첫째날의 기록을 남긴다. 지난번 이야기에서 이어보자면 목포의 전남도립도서관을 나온 우리는 다음날 배를 탈 삼학부두여객선 터미널을 확인하고 신안비치호텔 앞에서 저녁을 보냈다. 날씨도 적당하고 해변을 따라 설치된 조명이 아름다워서 저녁을 보내기에 좋은 곳이었다. 제주로 가는 배인 제누비아 2호는 아침 8시 반에 출발하지만 실제로는 7시가 안되서 제주로 갈 자동차들이 부두에 줄을 선다. 하지만 전기차는 제일 먼저 배에 집어넣기 때문에 안내원에게 말하면 앞으로 차를 가져오라고 한다. 덕분에 우리는 배에서 가장 먼저 승선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여기에는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제일 먼저 타기 때문에 배에 타서 원하는 곳에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나중에 제주에서 차를 뺄 때 거의 맨.. 2025. 10. 14. 제주도 한달살기 0 : 집과 차와 배 추석 연휴가 지나고 제주도에서 한달을 지내기로 했습니다. 아는 사람이 있는게 아니라서 인터넷으로 집을 구했는데 가장 집을 구하기 쉬운 곳은 에어비앤비더군요. 제가 집을 구하는 기준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제주시와 서귀포시 한가운데 같은 번화가는 싫다는 것. 또 하나는 그러면서도 밤이 되면 주변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으슥한 곳은 아니어야 한다는 것. 저는 외로운 시골이 아니면서도 도시 한가운데는 아닌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 마을을 산책하고 바다를 보며 가을 단풍을 보며 한달을 보낸 다는 계획이죠. 그 결과로 선택된 곳은 애월읍에 있는 한 숙소였습니다. 제주시에는 한달 단위로 집을 빌려주는 곳이 많은데 이곳도 그런 곳중의 하나로 1.5룸의 집인데 한달에 95만원정도면 쓸 수 있었습니다. 저와 아내만.. 2025. 10. 12. AI와 소프트파워 세상에 텔레비전이 등장하자 어떤 시대가 왔을까? 텔레비전을 만들고 수리하는 사람들이 스타가 되는 시대? 그게 꼭 틀린 건 아니지만 사실 더 큰 건 텔레비전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매력을 전파한 영화배우나 정치인들의 시대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AI의 시대라고 하면 AI 개발자가 스타가 되는 시대라고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 것같다. 그래서 AI에 대한 기술적인 세부사항을 공부하거나 코딩을 공부하는 것이 미래에 대한 이해로 가는 길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AI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이 무엇이건 누구도 한가지는 부정하지 않는다. AI는 이제까지는 불가능했던 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강력한 기술이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운 가능성이 크게 늘어난다는 AI의 시대에 우리는 역사를 돌아보.. 2025. 10. 11. 일을 뒤로 미루는 사람 정도의 문제지만 누구나 일을 미루는 습관이 있고 그걸 자책할 것이다. 일이란 귀찮은 것이기 때문에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며 사실 종종 바람직한 것이기조차하다. 왜냐면 상황은 바뀌기 때문에 필요이상으로 일을 미리 미리 처리하면 나중에 그렇게 한 일이 필요없는 일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을 뒤로 미루는 가장 첫번째 이유는 역시 귀찮음과 게으름이고보면 사람은 때로 자신이 일을 뒤로 미룬 것에 대해서 자책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마다 일을 뒤로 미루는 습관은 그 정도가 크게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일을 뒤로 미루고 미뤄서 항상 넘어야 할 선 근처에 가서야 일을 한다. 마감이 되어야 일을 하기 시작하고, 약속 시간이 되어야 길을 떠난다. 여기에는 세상에는 언제나 불확실한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 2025. 10. 10. 인간의 행복 우리는 행복하고 싶다. 하지만 인간의 행복이라는 말을 할 때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인지, 행복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옳은 것과 행복한 것이 혹시 충돌하지는 않나를 고민해야 한다. 왜냐면 인간의 유전자와는 달리 세상은 수천년전 문명의 시대로 들어선 이래 변해왔으며 점점 더 빨리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전자로 정의되는 인간을 인간으로 정의하고 그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21세기의 사회 환경에서는 옳지 않은 일로 여겨질 수 있다. 우리의 생각과 현실은 같지 않다. 예를 들어 인간이 맛있는 것을 배불리 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도 맛있는 음식의 양이 무한대로 증가할 때 인간이 무한대로 행복해 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무한대로 음식을 소비할 수도 없거니와 음식을 많이 먹으면 먹을 수.. 2025. 10. 9. 펜글씨에 대하여 나는 책을 읽을 때 가급적이면 독서 노트를 적어가면서 읽으려고 하는 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들이나 책에 대한 나의 이해가 생겼다가 금방 잊혀지게 된다. 책 한권을 읽었을 때는 그렇게 적혀진 독서 노트를 한번 더 읽는 것이 독서를 하는 데 있어서 큰 카타르시스를 준다. 즉 꾹 참고 책을 다 읽어서 완성된 독서 노트를 읽을 때 나는 진짜로 책을 읽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책의 전부를 한꺼번에 조망하는 느낌이며 참고 끝까지 노트를 작성한 덕분에 그걸 다시 읽을 때는 해냈다는 느낌을 받는달까. 그러다 보니 나는 대개 종이에 펜으로 글씨를 써가며 독서를 한다. 물론 소설같이 그렇게 하지 않는 장르도 있기는 하다. 그런데 나는 워낙 악필이라 펜이 내 마음에 드는 것이냐 아니냐가 여기에.. 2025. 10. 8. 내가 AI 사용을 자제하는 이유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AI가 미래를 바꾼다고 한다. 나도 AI 코딩으로 스마트폰 앱도 만들어 봤고, 음악이나 그림책도 만들어 봤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새로 나온 AI에 큰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그냥 뉴스를 따라가면서 그런게 있나 보군하는 정도다. 나는 왜 더이상 AI 사용법 익히기에 큰 시간을 들이지 않고 있을까? 우선은 내가 어느 정도 시간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즉 말했다 시피 나는 한때는 유료모델로 AI를 활용해서 몇개인가의 프로젝트를 했었다. 스마트폰 앱을 만들어 본 것은 그 중 하나이고, 내 블로그 글을 가지고 그것에 대해서 말해주는 프로그램을 짠다던가, 유튜브 음악을 저장해주는 프로그램을 짠다던가, 동영상이나 그림책을 만들어 본다던가하는 내가 생각나는 몇몇 프로젝트들을 해봤다. m.. 2025. 10. 5. 한국의 특이함 내가 이스라엘에 살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기록을 중요시하는 유태인들조차 한국인이 족보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몇십대 위의 조상까지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미국인들은 종종 몇대만 위로 가도 조상을 모른다. 아예 기록 자체를 찾기 어렵다. 몇몇 한국인들은 족보의 오류나 가짜 족보 문제를 가지고 족보의 의미를 폄하하는데 집집마다 있는 모든 족보가 진짜라는 것이 중요한 점이 아니라 족보가 이처럼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실은 대단한 일이고 의미가 깊은 일이다. 그 의도가 뭐건 이는 자세한 기록이 중요하다는 생각의 역사가 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데이터가 중요하다는 것은 근대화 정신의 핵심이거나 그 직전에 있는 생각이다.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을 생각해 보자.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이.. 2025. 10. 4. 이전 1 2 3 4 5 ··· 176 다음